History/루쉰2010. 8. 31. 02:40
 

그 복수라는 것.

정 철 현


미간척의 복수

 미간척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차라리 일어날까 생각해보았다. 475p


그날 그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복수를 다짐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칼을 만드는 명인이었다. 아버지는 왕으로부터 받은 신비한 쇳덩이로 칼을 만들었고, 이를 왕에게 진상하러 갔지만, 자신이 만든 칼로 죽임을 당한다. 의심이 많은 왕은 그가 진상한 칼보다 더 좋은 칼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그를 죽인 것이다. 하지만 미간척의 아버지는 이를 미리 알고, 그 쇳덩이를 나누어 또 다른 검을 만들어 숨기고 황궁으로 떠났다. 미간척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16년이 흘러 미간척이 청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에게 아버지의 원수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미간척은 어머니의 말에 따라 숨겨둔 검을 찾아서, 원수를 갚겠노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는 본디 우유부단하며, 소심하고, 여린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버지의 비운과 원수에 대해 듣고 나니, 그는 왕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막상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니 걱정스러웠나 보다. 그는 아무 걱정거리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태연히 원수를 찾아가리라 결심했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그는 쥐를 보고도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의 성격이었는데,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니 잠이 올 리가 없다.

 어머니는 그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그가 쥐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원수를 갚겠다고 떠나기 전날 밤 그가 뒤척이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쥐를 미워했다가 다시 불쌍해하고, 살려주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쥐를 밟아 죽여버리고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격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으려면 용기와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데, 미간척의 이런 성격으로는 원수를 갚기는커녕, 목숨만 잃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간척은 밤새 울었는지, 아니면 피곤해서 그런건지 눈이 퉁퉁 부은 채, 대문을 나선다. 푸른 옷에 푸른 검을 메고, 큼직한 발걸음으로 성 안을 향해 줄달음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보통 무협소설에서 원수를 갚으러 가는 검객들을 보면, 비장함과 증오감으로 오랜 세월을 감내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극에 달해 오히려 그를 차분하고 살기 넘치게 한다. 그리곤 원수를 찾아가 조심성 있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를 베어버린다. 하지만 미간척은 어머니에게 느닷없이 아버지의 원수에 대해 들었던 탓일까? 오랜 시간의 준비도 없었고 치밀하지 못하고 뭔가 불안해 보인다.

 길거리의 왕의 행차 때, 무조건 달려들 생각을 한다. 무모한 발상이다. 보통 치밀한 검객들은 그렇게 원수를 갚지 않는다. 미간척은 앞뒤 재지 않고 왕에게 달려들다 왕의 행차에 절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손에 걸려 넘어진다. 검객 체면을 다 구기는 일이다. 다행히도 그의 의도는 들통나지 않아서, 다음 기회를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역시 정신 못차리고 왕이 오는 길목에서 왕을 기다리고자 한다. 과연 그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나 오련지.

 그가 성 밖으로 나가 이제나저제나 왕을 기다리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그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때 어떤 사람이 국왕이 자신을 잡으려하고 있다며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미간척은 그를 따라가서 자신을 아냐고 묻는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자신이 대신 원수를 갚아주겠노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목과 검을 내놓으라고 말한다.

 그는 원수를 갚을 능력조차 없는 미간척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 것인지, 아니면 칼과 그의 목숨을 탐내는 자인지는 모르지만, 미간척은 자신의 목과 검을 그에게 내놓는다. 그 후, 그 사나이, 연자오자는 미간척의 원수를 대신 갚아준다.

루쉰의 복수

 그런데 연자오자가 미간척의 복수를 대신 갚아주는 장면은 『납함』의 <토끼와 고양이>에서 나오는 주인공, 쉰의 행동과 유사해 보인다. 고양이에게 생명을 빼앗긴 그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며, 주인공은 그들을 대신하여 복수를 하기 위해 청산가리 병을 들려한다. 쉰과 비슷하게 <미간척의 복수>에서 연자오자는 미간척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려 한다. 여기서 쉰과 연자오자의 행동은 루쉰이 하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유약한 자들을 대신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복수를 대신해주기가 그것이다. 토끼는 매우 약한 존재고, 미간척 또한 복수조차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유약한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쉰이 대신 복수해주고자 하지만 그리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토끼는 이미 죽었고, 미간척 또한 자신의 목을 내놓았다. 그렇게 모두들 죽고 난 후에 복수를 해야만 한다. 

 소설 속에서 연자오자는 미간척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의협, 동정, 그런 것들은 예전에는 깨끗했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고리대금업자의 자본으로 변했단다. 내 마음속에는 네가 말하는 것들은 전혀 없단다. 나는 단지 너를 위해 복수를 해줄 뿐이야! 479P


 너는 아직 모르는가 보구나, 내가 얼마나 복수의 명인가를. 너의 원수가 바로 나의 원수이고, 그가 또한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내 영혼에는 그토록 많은 것이 있다. 남과 내가 입힌 상처말이다. 나는 이미 나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 480P


이 말은 루쉰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복수하고자하는 마음은 정의심이나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단지 고양이나 왕과 같이 약한자를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자들에 대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이다. 그래서 미간척의 원수가 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면에서 복수의 화신이고 명인이다. 하지만 복수를 하고 살기어린 증오감을 내뿜는 자신을 보며, 자신 또한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자들과 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간척의 원수가 루쉰의 원수이고, 그 원수 또한 루쉰 자신인 것이다. 자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남과 나를 상처 입힌 분노와 증오가 루쉰의 또 다른 원수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보며 증오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루쉰은 약함들을 억누르는 그 강함을 보고 극단의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진정한 복수

연자오자는 왕 앞에서 미간척의 머리로 신기한 요술을 부린다. 금 솥에 미간척의 머리를 넣고 그것을 위 아래로 왔다갔다하며, 노래를 부르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는 이 요술로 왕을 솥 근처로 유인하고, 왕의 목을 순식간에 그 푸른 검으로 친다. 왕의 머리는 금솥으로 떨어져서 미간척의 머리와 물어 뜯기고 뜯기는 혈투를 벌이게 된다. 연자오자는 미간척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유약한 미간척은 그런 식으로 밖에 복수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약한 미간척은 그 속에서도 왕에게 당하기만 한다. 연자오자 또한 스스로 목을 베고 금 솥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미간척의 싸움을 돕는다. 그러다 그들은 어느 새 누군지 분간할 수 없는 세 개의 백골이 된다. 아무도 누가 왕인지 미간척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극단의 증오와 분노는 그 세 사람을 합쳐버려 하나가 되게 한다. 복수를 하고자하는 극단의 감정은 한 사람의 신체와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 감정은 순간의 것이 아니다. 계속 지속되며,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감정일 것이다. 그 몸과 마음은 온통 그에게 향해 있다. 그를 죽이는 순간, 이제 나는 없다.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나는 그 원수가 없다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복수를 감행하던 사람들은 그 복수가 끝난 후 죽는 것이 아닐까? 복수는 최소한 이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오로지 바쳐 누군가를 증오하기, 증오의 감정이 극단에 다달아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이판사판의 지경의 이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수의 경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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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