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권력~
l 코도화 된 ‘권력’
“이제 안전하지 않겠냐?” 라고 말하고 있는 우리에게 호령이 떨어진다. “ 모두들 밖에 나가서 줄을 서라!” 나는 이 호령이 죽음의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숨을 죽이고 뒷문에서 혼자 도망간다. 멀리서부터 전차가 오는 것이 보인다. 여기는 수용소다. 총을 가진 군인들이 사람들을 재촉하고 있다.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수용소에서 착용해야 할 제복을 입고 한 줄로 서도록 재촉 당하고 있다. 파수꾼도 지금부터 시작되는 공격을 보려고 히쭉거리면서 자기 일을 잊고 있다. 지금밖에 도망갈 기회는 없다! 나는 오직 혼자,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뒤에서 총소리가 울리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에서 10대가 끝날 때까지, 나는 자주 같은 주제의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무서운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 무리는 나를 죽이려고 하고, 나는 때로는 숨고, 때로는 뛰면서 항상 겨우 살아남았다. 가끔은 내 편도 있었지만, 나는 항상 혼자 살아남곤 했다. 보통 위험에서 벗어난 순간에 눈을 떴지만, 심장은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크게 고동을 쳤고, 땀이 흐르며 몸이 굳어져 있는 것을 느꼈다. 꿈속에서 나는 종종 나치에 쫓기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은 사회운동을 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재일조선인이 일본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자주 얘기하곤 하셨다. 가끔 재일조선인에 대한 폭언이나 폭력사건이 일어났으면 나에게 전해 주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서움에 떨곤 했다. 일본이름이 없이 한국이름으로 사는 나는 ‘재일조선인’ 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존재였고, 그것을 무서워했다. 어느 날 TV에서 나치에 대한 다큐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강하게 따가왔다. 광폭한 나치의 돌격대, 열광하는 독일의 ‘보통’ 사람들, 수용소에서 펼쳐지는 학대와 살인…. 그것을 보면서 전쟁중에 일어난 일본 광동대지진이 떠올랐다. 당시 치안유지를 위해 군부가 퍼뜨린 “재일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던지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재일조선인이 학살됐다. 그 때 ‘조선인 사냥’의 선두의 선 사람은, 군부와 일본 민중으로 만들어진 자경대였다. 자신의 ‘주체’가 없어진 민중이야 말로 가장 무서웠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야. 만약에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이 먼저 죽임을 당할 거야! 어떻게 도망갈 수 있을까?”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권력’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큰 협위이자 테마였다. 그런데 당시의 나에게 ‘권력’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나의 일상과는 전혀 먼 곳에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왕이나 경찰, 혹은 역사에 등장하는 나쁜 통치자들이 나의 권력의 상징이었는데, 그들은 나와 동떨어진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일상이라고 하면, 마치 안개가 낀 듯이 희미했다. ‘인권’이나 ‘자유’, ‘평등’이라는 말을, 혹은 ‘권력’ 이나 ‘폭력’, ‘부정’이라는 말은 잘 들었다. 나는 그 단어들에 고도화되어 기계적으로 분노했다. 나는 ‘때가 오면’ 언제든지 정의를 위해 권력과 싸울 수 있고, 또한 권력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나에게 ‘폭력’이란 무엇이었을까. ‘폭력’은 확실히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나의 눈앞에. 그러나 신기하게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개인간의 폭력을 ‘폭력’으로써 인식하지는 않았다. 일상의 일은 ‘다른’이야기였다. 나에게 권력이나 정의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완전히 코드화되어있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부당하다고 지정한 것, 정의라고 외친 것에 불가했다. 역설적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른바 ‘권력’ 에 저항한다는 것이 점점 다른 사람이 외친 ‘정의’의 범위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어갔다.
l 권력이란 무엇인가? 카프카의 <소송>
일상속의 권력...카프카의 <소송> 은 한 명의 평범한 은행원이 재판에 말려들게 되는 모습을 그리면서 권력에 대한 하나의 시점을 보여준다. 주인공 K는 어느 날 갑자기 감시인에게 체포되었으며, 자신에 대한 소송이 시작되었다고 듣는다. 이 체포는 K 에게 전혀 영운을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감시인은 어쨌든 “상급기관에서..자세한 정보를 입수한(P14)” 뒤에 결정된 “틀림없는 체포(P14)” 라고 한다. 여기서 감시인은 스스로 판단해서 K를 체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법률, 즉 어떤 매뉴얼에 따라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자기의 신분증명서를 제시하면서 무죄를 주장하는 K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말단 직원이라서 신분증명서 같은 것은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당신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매일 열 시간씩 당신을 지키면서 보수나 받을 뿐입니다(P14)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골라낸 의원이 법률을 통해 통치하는 사회다. 거기에서는 더 이상 ‘왕’ 은 없다. 대신, 법률이라는 매뉴얼이 우리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다. 법률에는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 그리고 해야만 하는 것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안 지킨 사람들에게는 형이 내려진다. 현재,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죄’ 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것은 법률이라는 이름의 권력에게 빼앗겨 버렸다. 우리는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매뉴얼’ 에 비취어 봐야만 한다. 매뉴얼을 지시하는 것은 이제 법률뿐만이 아니다. 시험의 해답, 드라마나 광고들은 우리의 행동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제시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있어야만 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다. 항상 답이 제시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기의 판단이 아닌, 내가 책임을 져서 한 것이 아닌 행동만 하다보니까, 이제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판단하기가 무섭다는 것. 이제 무엇이 맛있는지,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위험한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지 않으면 너무나도 불안해진다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지금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닐까. <소송> 에는 권력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빼앗긴 사람들의 모습이 잔혹하게 그려진다. 법률을 어기고 소송을 받게 된 사람들은 모두 불안 때문에 정신이 팔려버린다. 그들은 변호사에게 자신의 행운을 맡기지만, 불안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 한층 비참한 처지가 된다. K처럼 소송을 하게 된 블로크는 그 처지를 나타내고 있다.
― “어제 말인데” 변호사가 말했다. “내 친구인 제3 판사에게 갔었는데 화제가 점차 자네 문제로 돌아간 거야.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알고 싶은가? ” “아, 제발 말씀해주세요.” 변호사가 얼른 대답하지 않자 블로크는 다시 간청을 하고 무릎이라도 꿇듯이 몸을 구부렸다…… K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K는 놀라 이 혼란스러운 인간을 그저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그러 하여금 이리저리 몰리게 하고 친구와 적을 구별 못하게 만든 것은 소송 때문일까?..... “남에게 신경 쓰지 말게.” 변호사가 말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하게.” “그렇습니다.” 블로크는 자기 스스로를 격려라도 하듯 이렇게 말하고 슬쩍 곁눈질해 보면서 바짝 침대 곁에 가서 무릎을 끓고 앉았다. “변호사님 저는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가 말했다……(변호사) “…(블로크는) 쉬지 않고 (서류를) 읽었나?” “거의 쉬지 않았어요.” 레니가 대답했다. “단지 한 번만 마실 물을 청했었지요, 그래서 통풍창으로 한 잔 주었지요. 여덟 시에 그를 나오라고 해서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블로크는 지금 자기에 대한 칭찬이 얘기되고 있으니 잘 들어두라는 듯이 K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이제 꽤 희망을 가진 듯 보다 자유럽게 움직이면서 무릎을 꿇은 채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의 다음 말에 그의 겁에 질린 표정이 더욱 역력했다. “넌 그를 칭찬하지만” 변호사가 말했다. “바로 그게 나로 하여금 말하기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판사는 블로크 자신에 대해서나 그의 소송에 대해서나 유리하게 말한 적이 없어. ” (P205~210)―
여기서 블로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블록은 더 이상 자신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 그의 몸은 이제 완전히 권력의 힘아래 있으며, 그에게 속하지 않는다.
l 사람은 양떼와는 다르다
산다는 것은 선택을 나 스스로가 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택하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항상 같이 간다. 전술한대로 현재 사람들은 자기가 판단하는 것,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것은 ‘산다’ 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까. 판단은 권력이 한다. 그리고 그 권력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자기의 재판의 핵심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못 만났던 K처럼, 우리는 중앙에서 전체 권력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알 수가 없다. 책임의 부재.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 아래서의 권력의 특징이다. “개 같군.” 이렇게 외치면서 K는 마지막에 순간에서도 권력의 책임의 부재를 목격한다.
―한 남자가 프록코트를 열더니 조끼에 꼭 끼게 맨 혁대에 달린 칼집에서 양쪽으로 날이 선 길고 얄팍한 푸줏간 칼을 꺼내 높이 쳐들어 날을 달빛에 비춰보았다. 또다시 불쾌한 인사치레 말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K 너머로 다른 사람에게 칼을 넘겨주더니, 그 다른 사람은 다시 K 너머로 그 칼을 되돌려주었다. K는 자기 위로 손에서 손으로 오가는 칼을 스스로 잡아 자기를 찌르는 것이 자기의 의무일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직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목을 돌려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는 스스로를 완전히 입증해 보일 수도 없었고, 당국으로부터 모든 일을 제거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마지막 과오에 대한 책임은 그런 행동에 필요한 힘의 여분을 포기한 자가 겨야 할 것이다. (P246)―
전에 나에게는 권력은 아주 먼 곳에 있었다. 그리고 세계에는 ‘나쁜 권력’ 관 ‘그 피해자’ 밖에 없었다. 그 정이은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맡겨 버리는 한, 나에게 권력이 작동된다. 그런 의미로 일상에서 매 순간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관여하고 있는 권력의 장이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약자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다. 권력에게 선택을 맡기는 그 순간에도, 선택하고, 행동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인도의 혁명가, 비노바바베는 권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모든 일에서 정부의 도움에 의지하는 한, 그리고 마치 정부가 신이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호소해 대는 한, 세계는 정부라는 짐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양떼와는 다르다. 당신들 스스로가 자기 일을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나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일, 이것에서부터 혁명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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