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루쉰2010. 8. 5. 11:45

  무릇 우매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멀쩡하고 건강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병으로 죽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하다고 여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첫 번째 중요한 일은 그들의 정신을 고치는 데 있다. 당시 나는 정신을 고치는 데 있어 최선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루쉰은 그의 첫번째 소설집 『납함』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납함』에는 그가 말하는 '우매한 국민'에 대한 소설이 여럿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루쉰의 이러한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면 아마도 「풍파」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풍파」는 신해 혁명 직후의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뱃사공 칠근은 혁명의 바람을 따라 변발을 과감히 잘라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황제가 복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이미 변발을 잘라버린 칠근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더구나 마을 근방 최고의 식자인 자오치도 변발이 없으면 큰 화를 당할거라며 으름장을 놓자 칠근과 그의 가족들은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황제의 등극 소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황제가 등극하지 않았나보다 생각하고 다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이 소설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걸까? 여기에서의 '우매한 국민'이라면 단연 칠근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깥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아예 무관심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설프게 아는 것이 오히려 더욱 독이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칠근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하기를
 
"황제께서 등극하셨대"라고 했다.
  칠근의 처가 잠시 멍청히 있더니, 갑자기 크게 깨닫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참 잘됐네요. 그러면 또 대사령(大赦令)이 내리지 않겠어요!"
  칠근은 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변발이 없잖아."
  "황제께서 변발이 있어야 한대요?"
  "황제께서는 변발을 요구하거든."
  "당신 어떻게 알아요?"
  칠근의 처는 조급해져서 다그쳐 물었다.
  "함형주점 사람들이 모두 있어야 한댔어."
  칠근의 처는 이때 직감적으로 사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함형주점이라면 소식이 정통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황제의 등극이 실제로 고려되기는 했던 일인지 의심이 든다. 만일 실제로 등극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대사령이 내려지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변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함형주점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면, 학식이 있는 자오치 어른의 말이라면, 책에 쓰여져 있다고 하면 모두 맞는 말인줄만 안다. 이런 관계는 상당히 위험하다. 어느 한쪽의 견해나 잘못된 정보 따위를 틀림없는 사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러한 지식적 권력에 대항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루쉰의 말처럼 문예로 그들의 정신을 고쳐주어야 할까?

이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계몽'이다. 계몽이라면 지식인으로서 응당 행해야할 역할이지만 '정신을 고쳐주겠다'는 식의 접근 방법은 곤란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아래로' 가르치는 수직적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준다고 한다면 그건 그들이 '주체적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정세를 아는 것, 즉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똑바로 아는 일이다. 그러나 물론 이들이 그걸 제대로 알고 싶지가 않아서 모르는 것은 아니다. 생활 환경 자체가 세상사를 파악하기에 어렵기 때문이다.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이 구석진 시골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나랏일을 알겠는가? 그러다보니 기껏해야 함형주점에서 근거 없는 소문을 주워듣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TV도, 인터넷도 있는 지금에는 우리가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살고 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나랏일들도 어쨌거나 언론을 한 번 거쳐서 나온 정보다. 게다가 서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전하는 말이 다르니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정세를 객관적으로 본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들이나 「풍파」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이나 크게 다른 처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소설 속 인물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식적 권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그 모든 방법을 거론할 수는 없다. 물론 알지도 못한다.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방법을 말할 것인데, 그건 자신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일이다.「풍파」의 내용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이 칠근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함형주점 사람들의 생각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읽은 얘기라고 무조건 자신의 의견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먼저 사람들이, 혹은 책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면 자신이 그 의견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는지 그 입장이 확실히 서게 된다.「풍파」의 인물들이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변발이라는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서 변발을 자르느냐 보존하느냐를 곧 자신들의 입장으로 삼으니(자오치라는 인물도 포함하여) 껍데기 밖에 없는 지식이 통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정말 나의 의견일까? 아니면 어디에서 들은 얘기를 나의 의견으로 삼은걸까? 만약 후자라면, 그러한 의견은 어떤 생각에서 나온 의견일까? 그리고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있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지식'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정한 매체가 가진 지식적 권력을 자연스럽게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History/루쉰2010. 8. 3. 23:35

2NE곰 10.7.17 루쉰 『납함』

“그게 그것”, 냉소와 찌찔함 사이


“그게 그것”, 어떻게 세상이 변하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며 변화시킬 수 있다. 아니다, 바꾸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쉽게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것이 있다. 소설 단오절의 주인공 팡쉬엔춰는 “그게 그것”이라는 말로 양쪽 의견에 대한 확답을 교묘하게 피해간다. 세상은 변하지만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으며, 다 같고 그게 그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생각이지만, 이러한 틀로 세상을 보면 모든 현상이 쉽게 이해가 된다. 이해를 넘어서 넓은 아량까지 생긴다. 옛 투사들의 변절을 보고, 어제의 청년이 오늘의 어른이 되듯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으며, 부당한 행동을 보고도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고 그럴 수도 있으리라 넘어간다. 팡쉬엔춰는 그가 마주하는 상황마다 “그게 그것”이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비껴간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대적해야할 ‘적’이 없다. 사람, 인간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기에, 악도 적도 없는 것이다.
  그게 그것이기에 격변하는 사회에서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세상 돌아가는 것을 고고하게 관조하고 있다. 그에게는 인간의 사상이나 행동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팡쉬엔춰의 태도는 한마디로, ‘냉소’이다. 체념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태도가 그 스스로에게 너무나 큰 편안함을 준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이 한마디에 위안을 받는다. 팡쉬엔춰의 처세는 찌질하나,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변발이 짧은 머리로 바뀌는 것? 그것도 변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사회의 겉모습이 바뀐다고 해서 그 사회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이 바뀌는 것도 쉽지 않지만, 소위 인간의 한계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인간들이 가지는 본능적인, 본질적인 것은 늘 쉽게 부숴지지 않는 ‘철방’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인간에게 그래서 변혁은 그리 쉽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거창하게 역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팡쉬엔춰가 보기에도 사회 속 인간들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다. 학생들이 욕하는 관료는 그 이전에 학생이었다. 역할과 자리는 그대로고 사람만 바뀔 뿐이다. 사실 냉소적인 팡쉬엔춰가 아니더라도,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그게 그것”이 꼭 과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그 찌질리즘

 
다 그게 그거다, 라는 무심한 말이 어떻게든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 믿어야하는 투사들에게는 그들을 적막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한마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쉽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체념과 냉소를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그들 자신도 무언가 변하리라 확신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팡쉬엔춰의 비판 아닌 비판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마주한 시대상황은 암울했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팡쉬엔춰의 생각을 서술하는 루쉰은 이에 대한 어떠한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 루쉰 자신도 ‘철방’이 깰 수 있을까 고민하는 판이니 말이다. “산다는 게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팡쉬엔춰에게 그렇게 쉽게 “닥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게 그거”라는 이 무심한 사람의 명연설을 소설의 앞부분에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드러나는 팡쉬엔춰의 궁상스러움이다. 결국 그가 보여주는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는 나태함 이외에 다른 말을 덧붙이기 어렵다. 사회에 대한 어떠한 비판의식 없이 한마디로 귀찮아서, 특별히 무언가에 반대하는 행위 없이 편안히 먹고 살 정도의 돈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저 찌질해서 이중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팡쉬엔춰의 삶이야말로 ‘에게 그거’이다.


  에게 그거, 찌질한 삶. 어느 시대에나 찌질한 삶은 있을 수 있으며 단지 그 찌질함의 표현이 달라질 뿐이다. 어떤 이는 찌질함의 정의를 ‘보는 순간 때려주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것’이라 했다. 팡쉬엔춰가 말하는 것처럼 ‘그게 그거’인 시대를 살아가는 자, 그의 찌질함은 어느 순간에서 ‘구타유발자’인가? 그의 일상을 살펴보면 그 찌질함의 속내가 보인다. 그의 찌질함의 원천인 ‘그게 그거’ 요법은 일상 속에서 점점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모습으로 뒤틀려간다. 그는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본다. 이러한 냉소는 얼핏 보면 심지어 지식인스러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이 팡쉬엔춰 자신의 삶, 일상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즉, 팡쉬엔춰가 말하는 ‘그게 그거’의 고상함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
  "“보라구. 그래도 교원들이 급료를 요구하는 걸 천박한 짓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런 놈들은 사람이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은 쌀로 지어야 하고, 쌀은 돈으로 사야 한다는 이런 아주 기본적인 일조차도 모르는......” “맞아요. 돈도 없이 어떻게 쌀을 사며, 쌀도 없이 어떻게 밥을 끓여 먹는담......” 그의 두 볼이 부어올랐다. 부인의 대답이 바로 자기의 의견과 ‘그게 그것’이어서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꼴이 된 것 같아 화가 난 것이다.(「단오절」 p.185)"
  아내의 말로 그가 비난하던 교원들이나 자신이 결국 “그게 그것”이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 그의 두 불은 부어오른다. 화가 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이론대로라면, 그는 ‘쿨하게’ 교원들과 그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교원들이나 팡쉬엔춰 자신이나 당연히 ‘그게 그거’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그의 찌질함은 지극히 감정적인 자기 방어, 합리화이다. 사실 그 이면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자존심, 감정의 문제인 것이다. 그의 찌질함, 순전히 ‘그게 그거’는 어쩌면 지식인의 ‘정신 승리법’이기도 하다.

결론은 버킹검[각주:1], 태도의 문제

 
그런데 변명의 여지도, 옹호할 부분도 그다지 많지 않은 팡쉬엔춰라는 인간상을 비웃게 되면서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팡쉬엔춰에 대해서 직접적인 평가를 내리는 대신 그저 보여준다. 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고품격 궁상스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팡쉬엔춰 식 궁상스러움이 그 시대 지식인들이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의식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변혁을 소리 높여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들 자신들의 모습부터도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세상, 인간에 대한 회의와 절망은 말끔하게 걷어내기 쉽지 않다. 지식인이라는 자존심, 그 때문에 오는 궁상스러움에 대한 방어기제가 팡쉬엔춰와 같은 ‘정신승리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게 그것”이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켜 버린다. 갇혀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나름의 ‘승리’이든 간에 적어도 우리는 팡쉬웬춰가 찌질하다는 것을 안다. 변화에 대해서, 쉽게 그 가능성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과 일상 또한 “그게 그것”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세상의 틀을 깰 수 있을까?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을까? 이 소설 속에서 루쉰은 절실하지만 진부한, 누구도 확신하여 대답할 수 없는 문제에 대답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결론은 버킹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 아니, 태도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변한다고 믿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든 간에 말이다. 자신에게 이미 운명이 정해져있든, 정해져있지 않든 간에 결국 오늘 하루를 눈뜨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진정 ‘운명’이다. 변화를 희망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희망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희망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들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소박한 의지와 의도이다. 그 소박함도 없이는 하루를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대가 바로 루쉰이 살아갔던 시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은 일단 접어둔 듯하다. 대신 루쉰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거창한 혁명도 투쟁도 아닌 오늘하루를 살아갈 의지, 태도이다. 물론 그 태도가 최소한 ‘에게 이거’는 아닐 뿐이다.


  1. "결론은 버킹검"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정말로) 의류 CF광고 멘트입니다. 필자는 한 소설에서 이 구절을 매우 인상깊게보고 에세이에 인용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있는 광고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등등 많은 이들의 논란을 잠재우고자 버킹검 CF 주소를 올립니다. mms://media.adic.co.kr/tv/wmv300/200004/V6A01051.wmv [본문으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History/루쉰2010. 8. 2. 00:13
**서울신문에 게재한 원고입니다.

[고전 톡톡 다시 읽기] <18> 루쉰 ‘아Q정전’

아큐는 곧 우리네 모습

중국 근대 문학가 루쉰(迅)은 ‘아Q정전’을 일간지 ‘천바오’(晨報)에 1921년 12월4일부터 1922년 2월12일까지 주 1회 또는 격주로 연재했다. 첫 편이 발표된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다음엔 자기가 당하는 차례가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했다. 아큐에 대한 이야기가 자신에 대한 빈정거림이라고 생각하고선 신문 기고자들을 닥치는 대로 아큐의 작가라고 의심했다고 한다. 루쉰이 작자임이 밝혀진 이후에는 아큐 이야기가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다니는 사람 또한 많았다. 아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날품팔이꾼 아큐는 이름, 고향도 알려진 바 없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다. 뭐 하나 똑부러지게 해내는 것도 없다. 몰골도 형편없다. 그런데 이 볼품없는 사내, 자존심만은 강하다.

▲ 1935년 판화가 리화가 그린 작품 ‘중국이여 절규하라’.

●아큐의 정신승리법


문제
는 자존심이 특정한 장소와 시점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의 자존심은 강자 앞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강자 앞에서 무력하다. 모욕을 당해도 자존심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싸울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노와 치욕만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욕망의 배출구를 찾아야 한다. 어디에서? 그는 자신보다 더 약한 자들에게서 이를 찾는다. 가령 노예도 폭군이 될 수 있다. 그에게 자식과 부인이 있는 한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아큐는 마을에서 가장 무력한 부류에 속하며 가족조차 없다. 따라서 자신보다 약한 자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이 때는 스스로를 공격한다.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같이 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

스스로를 때리면서, 때린 ‘나’와 맞는 ‘나’로 나를 분리한다. 그리고 때린 ‘나’를 기억하고, 맞았던 ‘나’를 망각한다. 이때 분노와 굴욕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자신은 폭력을 당한 존재가 아니라 행사한 존재라는 환상을 통해. 아큐는 자신이 당한 분노와 굴욕감을 자각하지 않는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이며, 이런 고양감 속에서 분노와 굴욕감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아큐는 말한다. 자신도 주인이라고. 그러므로 아큐는 늘 즐거울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한다. 루쉰은 이를 ‘정신승리법’이라고 부른다.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 아큐는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못한다.


●즐거운 환상 vs 썰렁한 일상


우리는 자신이 부정될 때 존재의 변신을 꾀한다. 그러나 아큐는 이런 체험의 현장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루쉰이 아큐를 노예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예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해체를 거부한다. 이들은 오직 눈앞의 환상만을 붙잡으려 할 뿐, 패배라는 쓰디쓴 일상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괴로움이나 불안과 대면한다. 이 불안과 괴로움을 통해 나를 구성하는 표면인 습속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이 때야말로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 즉 습속을 날카롭게 재단하는 힘, 그리고 습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자유를 향한 절연(絶緣)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노예는 정해진 길로 가길 원하지 낯선 길로 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습속을 거부하지 못하며 자유 또한 체험하지 못한다. 아니 노예들은 습속과 억압을 욕망하지 자유를 욕망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사코 자유를 거부한다. 루쉰은 ‘허(虛)를 실(實)로 오판’한 것에서 환멸의 비애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 환멸 앞에서 몸을 돌려 단단해 보이는 것으로 되돌아간다.

가령 아큐는 패배에 직면할 때, 환멸의 비애를 다른 환상으로 치환한다. 그러나 단단해 보여도, 즐거워 보여도 ‘허’(虛)는 ‘허’(虛)다. 아큐가 계속 미끄러져 간 것도, 이 환멸의 비애를 애써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 이후에 오는 실재의 삶, 즉 썰렁한 일상을 견디지 못했다. 아니 견디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썰렁한 일상은 회피된다. 아큐는 애써 밝은 빛 속에 있다고 자위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자신이 서 있는 곳조차 알 수 없는 깊은 어둠, 무명의 세계다.


●행인-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자!

 
그런데 루쉰은 이런 아큐의 어둠을 지켜볼 뿐 대안을 쉽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아큐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허위와 환멸을 붙잡고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허(虛)한 세계는 아큐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의 무명(無明)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 역시 아큐다. 무상함,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겸허해진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황량한 일상을 환상 없이 만날 수 있다. 

루쉰은 사람들이 이런 허위나 환상, 명분에 걸려서 넘어지지 않기를 희망했다. 왜냐하면 자기를 기만하지 않는 인간만이 황량하고 썰렁한 일상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허(虛)가 삶의 조건임을 인정하는 이들은 자신이 별로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삶의 무상함과 가변성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상황에 한 발을 앞으로 내민다.

따라서 자신이 별로 의지가 되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도리어 계속 길을 걸어 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환상이 없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딛게 된다.

썰렁한 일상 속, 그 길이 보이지 않은 삶 속에서라도 빛을 찾아내면 된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 해서 빛이 없는 게 아니다. “희미한 빛, 어두컴컴한 빛, 편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어둠, 아주 캄캄한 어둠” 처럼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한다. 빛과 어둠이라는 말의 환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진호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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