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톡톡 다시 읽기] <18> 루쉰 ‘아Q정전’
아큐는 곧 우리네 모습 | ||||||||
중국 근대 문학가 루쉰(迅)은 ‘아Q정전’을 일간지 ‘천바오’(晨報)에 1921년 12월4일부터 1922년 2월12일까지 주 1회 또는 격주로 연재했다. 첫 편이 발표된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다음엔 자기가 당하는 차례가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했다. 아큐에 대한 이야기가 자신에 대한 빈정거림이라고 생각하고선 신문 기고자들을 닥치는 대로 아큐의 작가라고 의심했다고 한다. 루쉰이 작자임이 밝혀진 이후에는 아큐 이야기가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다니는 사람 또한 많았다. 아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날품팔이꾼 아큐는 이름, 고향도 알려진 바 없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다. 뭐 하나 똑부러지게 해내는 것도 없다. 몰골도 형편없다. 그런데 이 볼품없는 사내, 자존심만은 강하다.
●아큐의 정신승리법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같이 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 스스로를 때리면서, 때린 ‘나’와 맞는 ‘나’로 나를 분리한다. 그리고 때린 ‘나’를 기억하고, 맞았던 ‘나’를 망각한다. 이때 분노와 굴욕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자신은 폭력을 당한 존재가 아니라 행사한 존재라는 환상을 통해. 아큐는 자신이 당한 분노와 굴욕감을 자각하지 않는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이며, 이런 고양감 속에서 분노와 굴욕감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아큐는 말한다. 자신도 주인이라고. 그러므로 아큐는 늘 즐거울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한다. 루쉰은 이를 ‘정신승리법’이라고 부른다.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 아큐는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괴로움이나 불안과 대면한다. 이 불안과 괴로움을 통해 나를 구성하는 표면인 습속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이 때야말로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 즉 습속을 날카롭게 재단하는 힘, 그리고 습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자유를 향한 절연(絶緣)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노예는 정해진 길로 가길 원하지 낯선 길로 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습속을 거부하지 못하며 자유 또한 체험하지 못한다. 아니 노예들은 습속과 억압을 욕망하지 자유를 욕망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사코 자유를 거부한다. 루쉰은 ‘허(虛)를 실(實)로 오판’한 것에서 환멸의 비애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 환멸 앞에서 몸을 돌려 단단해 보이는 것으로 되돌아간다. 가령 아큐는 패배에 직면할 때, 환멸의 비애를 다른 환상으로 치환한다. 그러나 단단해 보여도, 즐거워 보여도 ‘허’(虛)는 ‘허’(虛)다. 아큐가 계속 미끄러져 간 것도, 이 환멸의 비애를 애써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 이후에 오는 실재의 삶, 즉 썰렁한 일상을 견디지 못했다. 아니 견디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썰렁한 일상은 회피된다. 아큐는 애써 밝은 빛 속에 있다고 자위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자신이 서 있는 곳조차 알 수 없는 깊은 어둠, 무명의 세계다.
이런 허(虛)한 세계는 아큐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의 무명(無明)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 역시 아큐다. 무상함,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겸허해진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황량한 일상을 환상 없이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별로 의지가 되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도리어 계속 길을 걸어 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환상이 없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딛게 된다. 썰렁한 일상 속, 그 길이 보이지 않은 삶 속에서라도 빛을 찾아내면 된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 해서 빛이 없는 게 아니다. “희미한 빛, 어두컴컴한 빛, 편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어둠, 아주 캄캄한 어둠” 처럼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한다. 빛과 어둠이라는 말의 환상에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진호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History > 루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를 향한 복수심 -토끼와 고양이를 읽고- -철현- (0) | 2010.08.13 |
---|---|
아큐를 이해하기 (3) | 2010.08.10 |
현실을 살아가기 (1) | 2010.08.08 |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들 (2) | 2010.08.05 |
“그게 그것”, 냉소와 찌찔함 사이 (4) | 2010.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