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생명연습2011. 5. 14. 21:31

2NE곰 다이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에세이#2

씨리우, 그 사람의 의미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붙이며, 혹은 그 붙여질 의미를 상상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의미라는 것은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나 절실하게, 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를 생각하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의미 없는 삶’이란 인간에게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견딜 수 없음 때문에, 사람은 때로 ‘의미’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놓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해보곤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작가는 각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래서 그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녀는, 혹은 그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이다.

소설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의미’를 되새긴다. 사실 나는 허징후, 정확히 말하면 작가 다이허우잉이 말하는 ‘뜨거운 휴머니즘’이랄지. 계급 투쟁, 노선 투쟁 등등의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말하고 싶은 ‘인간’에 대해서는 말이다. 아마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쑨위에나 허징후가 신소설이나, 계몽소설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내 눈이 가는 곳은 말 그대로 ‘사람인’ 씨리우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조롱하는 ‘의미’를 붙잡고 있는 그를 말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인간이란 모두 이렇다. 아침부터 밤까지 싸워도 나아지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싸우지 않으면 더 악화된다!(p375)”


사람아 아, 사람아! 이 탄식은 허징후에게서도, 쑨위에에게서도 나온 것이 아니다. 바로 씨리우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씨리우는 어떤 인물인가. 당위원장 서기라는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역사는 지금까지도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불초자식을 들이밀 줄이야. 참으로 진저리가 난다!(p.96)”라고 푸념하는 자이다. 또는 다시 한 번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기에, 그렇게 결혼 생활을 계속한다. 사실 그가 바라는 앞으로의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마 그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마디일 것이다. “아, 쫌!” 귀여워하던 아들놈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을 조롱하고, 재혼한 젊은 아내는 늘 우는 소리다. 씨리우는 여전히 마르크스를, 마오 주석을 이야기하지만, 역사는 이제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 사람, 씨리우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젊은이들은 그가 역사에 뒤쳐진 늙은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과거 행했던 잘못에 대해 역사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씨리우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상부로부터 내려온 방침일 뿐 “질 수 없는 책임”이다. 어찌되었건 그가 의미를 갖는 것은 ‘자신의 논리’이다. 만약 지금껏 자신이 가져왔던 논리를 버린다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사람아, 하고 탄식하면서 계속 싸워가는 것이다. 아무리 의미는 제각각이라지만, 내가 의미 붙여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막상 손을 펴보았을 때 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에, 나는 꼭 쥔 손을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라한 씨리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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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생명연습2011. 4. 29. 10:08

2NE곰 다이허우잉『사람아 아, 사람아』 에세이#1


역사,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역사는 왜 내 어깨에 무거운 짐부터 지우는가?(p.330)”

  어린 학생인 한한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 앞에 선 인간들은 늘 그렇듯, 탄식한다. 역사여, 아, 역사여. 쑨위에, 허징후, 쉬허엉종, 자오젼후안. 이들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역사의 무게를 지울 수 없는 자들을 보노라면 안쓰러움과 함께 묘한 질투심 같은 것을 느낀다. 그 질투심은 그들이 가진 감각, 아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에 대한 통각’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들을 나는 수많은 픽션들에서 보아왔다. 그 매체가 소설이건 영화가 되었건, 아니면 사람들의 국적이 한국, 중국 그 어디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분명 그들의 삶은 하나의 ‘논’픽션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 그들의 역사, 고통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픽션’ 그 이상, 이하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는 앞서 말한 질투심, 어쩌면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쎄, 개개인의 고통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나의 일상에서 오는 시시콜콜한 아픔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고통을 저울의 양 끝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주눅이 든다. 나의 일상이, 그들의 역사 앞에서 무색하게 될 때 말이다. 물론 나는 역사를 짊어진 자들을 향해 땡깡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부정할 수 없이, 나 또한 나의 역사, ‘논픽션’으로서의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과 다른 역사를 살아갈 뿐이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인 말이지. 그러나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추진시키는 요인, 특히 인간은 구체적이고 복잡 다양하며 그야말로 신비로운 존재야. 더불어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질 사람을 우리가 기다려서는 왜 안 된다는 거지? 한 민족의 역사, 한 시대의 역사는 수천 수만 명의 역사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야. 그 모이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p.345)”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고 있다. 단지 나의, 우리 세대의 역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압이라고 한다면 소설 속 이들에게 역사는 그들을 짓누르는 물보라의 수압과 같은 것이다. 내 주위를 알게 모르게 채우고 있는 공기. 나에게 역사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경향성’이라 답할 것이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대체로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흐름.

  앞서 나는 그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통각’에 대해 말하였다. 이것에 대해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왔지만, 사실 나는 계속 ‘무엇인가 나의 곁에 있음’을, 무엇인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통증(날카롭지는 않지만 답답하게 누르고 있는)은 나와 동시대를 사는 이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혹은 강렬하게 느끼고 있을 역사, 픽션이다.



***

에세이 미리 올립니다.
에세이를 읽어보니 뒤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무엇인가 나의 곁에 있는' 역사의 감각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더 제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쓰려니 감상만 떠다니고 글자가 되지 않더라구요.
어렵네요.

전주 잘다녀오겠습니다. 내일, 즐거운 세미나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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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ne곰 공부방2011. 2. 25. 03:20

본래 제가 찾으려고 했던 주제를 설명하자면...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권력 밖의 예술 활동'?
그리고 그러한 활동의 역사, 혹은 그러한 활동을 계속 해온 어떤 집단의 역사 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을 찾기도 힘들고....(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제가 뭔가 얻으려고 하는 것을 이미 상정해두고 거기에 맞는 책을 찾으려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책에 접근해 들어가면 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만 줄창 하다가
"결국엔 실천이 중요하지! 모두 함께 모여서 놀아보자!" 라는 식으로 끝날게 왠지 뻔히 보이기에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포커스를 맞춘 것은
'무엇'의 역사인가 하는 점 보다도 '역사'라는 말 그 자체였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사실 그 장대한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의 존재 자체에서 더 큰 감흥을 받습니다
저한테 역사라는 말은 그런 것 같습니다
역사적 의의, 혹은 오늘날에 끼친 영향,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그 기나긴 시간 자체가 만들어낸 많은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끈들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마침 소설을 한 권쯤 읽어도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도 생각나고 해서,
저는 2NE곰에서 '대하소설'을 읽어보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 하에서 책을 선정한다기 보다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지켜보면서
각자가 나름대로 얻어가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그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요!
오오 벌써부터 기대감이

근데 문제는....
이 대하소설이라는 것이 웬만해선 열댓권을 넘어가기 때문에..
만약에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것을 읽으려고 했다가는 아마 2NE곰 내내 그 작품만 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하 중에서도 비교적 짧은 대하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읽어보는게 어떨까 합니다
흠 결국 처음에 얘기했던 도스토예프스키로 돌아와 버렸는데...
분량은 두권에서 세권정도입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번역이 괜찮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상 하 두권으로 나왔습니다
역시나 분량도 엄청나게 많고
나오는 인물들도 무지하게 많습니다

저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품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안 읽은 사람들에게
"일단 읽어봐라. 제발 좀 꼭 읽어라. 두꺼워도 일단 읽어봐라. 읽어보면 안다."
라며 맹목적인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평했고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이 안에 있다"라고 까지 말했군요
사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지 궁금한 것도
이 책을 선정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까라마조프 가문의 역사가 무엇을 말해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주제의식이 없이 책을 선정한 것이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미시적인 범위 안에서
어떤 현상이나 개념, 구조보다는 그들 인간 자체와 공감하고
거기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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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ne곰 공부방2011. 2. 13. 22:16
                          [사진은 작년 봄에 찍었던 것.. 여러분 아시는 그곳맞습니다. 갖고있는 사진이 별로 없어서...^^;]

여러분 안녕
드디어 인터넷선을 이용할수 있게 되어 기쁨에 들뜬 지현이에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이 너무 듣고 싶지만 못듣겠지,피. 했는데 기적적으로 인터넷이 고쳐졌어요^_^
덕분에 니몽씨가 부탁한.. 토요일날 제가 짜왔던 커리1차목록도 올릴수있게됐어요- 도서관이 문을닫아서 어쩌나 했는데말이죵.후후

잠깐 토요일날 얘기를 리뷰하고 지나가면,
연구실을 나왔다고 거기를 대신할 다른 '어떤 곳'을 찾으려는건
너무 쉽게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는 것 아닐까?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게 아니면 취업. 내 상황은 꼭 이렇게 양자택일의 이분법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걸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공부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고착화된 외부에 있거나(비제도권을 보장받는달까 우습지만), 고립된 자기 속에 있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설 자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되고, 또 내 할말을 만들어야 된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늘 제자리일거라고.

다들 취지에는 동감해주었고 그래서 기뻤습니다.후후후
물론 부족한 점도 많았지요. 친구들이 해준 얘기는 다음과 같아요.

느낌은 오는데 주제를 한마디로 뭐라고 말할수있을까
: 여러가지 키워드들이 있었죠 소수성, 외부성, 진보,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등.. 여기서 각자 꽂힌 걸 가지고 혹은 서로 더 연관을 시켜서
담주 회의 때까지 머리들 더 굴려옵시다.

읽을 책..소설은 은유라서 좀 더 직접적인 말을 읽고 싶다고 했는데 철학도 개념어들 가지고 구체적 얘기 할 수 없지 않나?
: 뭐 처음부터 어려운 철학자들 책 읽는 건 저도 안하고 싶어요.. 다만 어느정도는 개념들 정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자기식으로 말할 수 있을만큼 소화했을 때 내 언어의 폭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나.. 어쨌든 좀더 사회적 이슈나 역사 등 현실 문제랑 연관되어 있는 책 위주로 선별하는걸로~ ^^ R이나 N이나 그린비나.. 이미 이런 분야 책들로 세미나 했을 거라 생각되는 곳에서 리스트 참고하자는 얘기도 있었고요.

소설은 안읽을건가?
: 소설만으로 리스트를 뽑지는 않겠지만 군데군데 추천 받아서 넣기로 했지요~ 이것도 더 알아보기로!

다음 회의는 2월 19일(토) 낮12시입니다. 이때는 빈가게가 아니라 홍대에서 모일 것 같아요
바로 이어서 백지 모임이 거기서 있을 예정이라.. 죠지 씨가 정직원을 노리고 있는! 까페 겸 복합문화공간 이래요(이름은 잊어버림)
시간이나 장소는 추후 문자로 다시 공지할게요. 그럼 담주엔 꼭 커리 확정할 수 있기를 바라며 ..ㅋㅋ (새로운 피 수혈하려면 2월넷째주부턴 홍보 들어가야 하니까^^) 그럼 다들 한주간화이팅! 다음주 못오는 분들은 금요일까지 블로그에 올려주세요^^ 토요일날 출력해갈수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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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urney.
History/루쉰2010. 8. 19. 02:59

2NE곰  루쉰 소설집 『방황』

루쉰, 오 마이 라이팅!(Oh, my writing!)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등골 서늘한 일상의 ‘침공’

  한 작가가 ‘행복한 가정’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쓴다. 그 소설에는 매우 세련된 부부 한 쌍이 등장한다. 작가는 고상하고 우아한 주인공들의 삶을 하나하나 구상해본다. 그런데 소설 구상이 쉽지만은 않다. 안타깝게도 그의 구상은 단지 상상, 가정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쓰고자 했던 행복한 가정은 처음부터 ‘가정’에서 시작된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도시 조차 정할 수 없다. 그저 A시이다. 당시 중국의 도시 중에서는 ‘현실적’으로 작가가 구상하는 행복한 가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지만, 교수들이 좋게 평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들에게 『이상적인 남편』을 읽히고, 진귀한 요리를 먹게 한다. "My dear, please." 느끼한 영어로 서로에게 뱀장어를 권하는 부부라니.
  소설은 어찌어찌 진행된다고 해도 더 큰 문제가 그를 괴롭힌다. 그것은 바로 소설 속 행복한 가정과는 정반대인 그의 일상, 현실이다. 소설을 구상해나가면서 일상의 언어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장작 스물다섯 근, 오오는 이십오. 떨어진 장작을 사는 일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그러나 일상이 글 속으로 ‘침투’하려 할수록, 오히려 소설은 작가의 일상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즉, 그는 그의 일상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며 글을 구상해나가는 것이다. 그는 그의 일상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가령 책장 옆 배추더미라든지, 늘 열려있는 서재 문과는 정반대의 ‘행복한’ 세계를 소설 속에서 구현해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침투는 ‘침공’으로 바뀌어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쓰려는 ‘행복한 가정’과 배치되는 자신의 현실을 마주 할 때마다, 허리에 바늘이 박히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살인마처럼 일상은 그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아내가 아이를 때리는 ‘찰싹’소리,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를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만든다. 결국 그는 자신의 현실과 소설 사이의 괴리를 참지 못하고 원고지를 찢어버리고는 그것으로 아이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 준다.

현실은 시궁창, 글쓰기 그리고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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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면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손으로는 젖과 꿀이 흐르고 무지개가 뜨는 낙원을 그릴 때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다. 내 손으로 쳐내려간 활자들이지만, 나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러려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짜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영어발음 굴려가며 맛있게 먹을 뱀장어를 집어 올렸는데, 뭣도 아닌 현실이 내 허리를 콕콕 찌르고, 순간 놀라 뱀장어를 떨어뜨린다. 떨어진 뱀장어가 능글맞게 웃으며, 네 현실이나 돌아보라 한다. 내가 그려내는 글 속의 세계는 위풍당당하게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뚜벅 뚜벅 나아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일상은 여전히 글과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사실 글과는 달리 나는 전혀 나아가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고 희망적이 되고 싶은지 그 조차도 잘 모르겠다. 내 글 속에는 희망으로 향하는 너무나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들이 등장하지만,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차라리 글을 쓰지 않는다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질까? 더 이상 그 평행선, 뱀장어의 비웃는 얼굴을 떠올릴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루쉰의 소설, 잡문을 읽다보면, 현실 속 자신과 그의 글 사이에서 고민하는 루쉰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는 변화와 희망을 얘기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회의하고 절망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그의 글을 “가면 속 외침”이라고 한다. 나는 나의 또 다른 글에서 루쉰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괴리, 모순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을 직시한다는 것, 그 비참함을 안고 한 시대를 살아낸 ‘인간 루쉰’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루쉰을 이렇게 받아들여 글을 쓰는 것과 나의 일상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 것인가. 루쉰을 위대하다고 ‘쓰는 나’는 오히려 루쉰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그를 밀어냈던 것은 아닐까. 루쉰이라는 화살이 내 일상, 현실에 닿지 못하도록 글을 방패삼아 막아내며 말이다.
  소설「행복한 가정」속에서 원고를 찢어버린 작가의 눈앞에 “여섯 포기의 배추더미”가 우뚝 서있다. 루쉰이 직시했던 것은 바로 이 우뚝 서있는(아마 우뚝 서있어 피할 수 없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오, 마이 루쉰. 오, 마이 라이팅! 아직은 나지막하게 탄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젠가 나 또한 원고지를 구겨버리고 ‘무언가’를 마주해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미 그 배추더미의 실체를 어느 정도 마주해버렸다. 시궁창인 현실과 쉽게 바뀌지 않는 시궁창의 그 끈질긴 관성. 지금 이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타이핑했다 지우고를 반복하는 나의 글, 나의 현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시궁창의 관성에 지배당하기 전에 희망찬 ‘그럼에도’가 아닌 ‘오, 마이’의 절규로 끝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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