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함에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인물은 아큐이다.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큐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다가도 갑자기 방향을 틀어 전혀 다른 행동이 나타난다. 혹은 아예 그의 생각을 읽어버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아큐는 자신의 부스럼을 놀리는 동네 건달들에게 몇 번 덤볐다가 항상 벽에 머리를 짓찧게 된다. 그래도 절대로 자신의 부스럼에 대한 놀림을 넘기지는 않는다. 아큐를 일반적인 바보나 맹추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몇 번 호되게 당한이후로 놀림을 받아도 그저 속으로 분해할 뿐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맞는 것이 두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건달들에게 힘이 통하지 않자 매섭게 째려보기 시작한다. 정말이지 대단한 자존심이다. 이랬던 그가 얼마 안가서 건달들에게 머리채를 잡히자 자신은 벌레라며 빨리 놓으라고 한다. 그 대단한 자존심이라면 오히려 머리채가 뜯겨져 나가도 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네가 어떻게 나의 친척일 수가 있냐고 화를 내며 따귀를 때리는 짜오 나으리 앞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것은 그가 당한 폭력의 수준 차이 때문인 것일까?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맞는 것이 더 아프고, 덜 아프고를 떠나서 맞는 것 자체를 싫어할 텐데 아큐는 폭력을 자처하고 있다. 매에 맞기 전에 변명을 하기보다 매에 맞고 난 후 변명을 하는 것이 그다. 그리곤 후련해 한다. 한 대 맞은 것으로 일이 일단락되었으니 말이다. 보통 맞고 나면 더 반항심이나 울분이 생기는데 후련해 하다니. 자존심이 강한 아큐라면 오히려 가슴속에 남들보다 큰 앙갚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크기가 남들보다 큰지 작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나름의 울분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는 이런 울분을 가끔 정신적 승리법으로 푼다.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거라는 생각도 하고 이 생각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울분이 심한 날은 제 손으로 제 얼굴을 세게 몇 번 때린다. 맞은 것은 ‘나’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때렸다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의 생각이나 기분을 읽어내려 했던 내 시도는 철저히 무너진다. 이런 정신적 승리법을 만들어 낸 그의 사고를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다. 짜오 나으리나 가짜 양반, 미장 사람들이 아큐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그를 마을의 하찮은 녀석, 어중이떠중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평소에도 그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 소설 속 그의 행적을 봤을 때 충분히 독특한 사람임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큐정전>의 서문만 봐도 그렇다. 작가가 그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자 하나뿐,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 그는 너무나 복잡한 사람이다. 혁명당원의 목이 댕강 잘리는 것을 보고서도 ‘혁명이란 것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는 그의 사고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혁명을 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들, 예를 들면 짜오 나으리네 가구나 재산들과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녀석들에 대한 복수가 그를 유쾌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가 혁명에 가담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거인 나으리의 두려움, 미장 사람들의 두려운 눈빛이 그를 신명나게 했다. 마을의 존경받는 어르신조차도 두려워하는 혁명과 반란에 마을사람들도 덩달아 두려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큐는 혁명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도 변발을 위로 올리고 ‘반란이다!’를 크게 외치고 다닌다. 그가 멍청하고 상황파악 능력이 모자라서 그랬을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사람들의 두려운 눈빛이 그에게 주는 유쾌함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바보면 다 혁명하는 자인가.
<왜 영구가 떠오르는 걸까...?>
아큐가 종잡을 수 없는 생각과 성격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있다. 그는 그 스스로가 너무 잘났다. 이는 그의 자존심이 세다는 말인 동시에 남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게다가 들을 마음도 없어 보인다. 무인도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사람처럼 아큐는 그의 기분이나 감정, 이것들의 해소와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에 대한 해석들을 스스로 해결한다. 위에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정신적 승리법이나 혁명에 대해 느끼는 신명 등.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그를 위해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아큐에게 무게감 있게 살아가라고 충고해준다. 아큐의 반응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자신에게 충고를 해준 그 사람을 욕할 것이다. 아니면 귀를 한번 후비고는 멍한 표정으로 자리를 뜰 것이다. 아큐는 남의 말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돈이 없어 며칠을 굶고, 옷이나 집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간다.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는 그만큼 강하다. 여기서 강하다는 것은 의지가 굳거나 생활력이 강하다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삶에 단단히 붙어있다는 느낌이랄까. 이런 강함.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강함. 그만큼 그는 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일 테다. 여기서부터 아큐에 대한 이해, <아큐정전>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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