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용택2011. 6. 21. 15:53

표도르 빠블로비치

"장로님께서는 진짜 어릿광대를 보고 계신 겁니다! 이렇게 소개를 드리지요. 오랜 습관이니까, 나 원 참! 제
 가 이렇게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나름대로의 어떤 의도가, 남들을 웃기기도 하고 나도 유쾌해지려
 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쾌해질 필요가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p.81)

"제 농담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말입니다. 신부님, 저는 양쪽 볼이 아래 잇몸에 
 꽉 들러붙기 시작해서 거의 경련 같은 것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건 귀족 집에 얹혀사는 식객으로서 밥을 
 빌어먹어야 했던 젊은 시절부터 생긴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광대지요, 신부님, 유로지비임에 틀
 림없어요. 분명히 저의 내부에는 악마가 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대단한 놈은 아닌 것 같아요. 좀더 대단한 
 놈이었다면 다른 집을 택했겠지요." (p.83)

"사실 제가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저는 누구보다도 비열하며 모두가 저를 어릿광대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
 지요. 그래서 '내가 정말로 어릿광대짓을 해주지.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
 희들 모두는 나보다 더 비열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치심 때문에 어릿광대가, 위대
 하신 장로님, 바로 그런 수치심 때문에 어릿광대가 된겁니다. 그런 우려 때문에 소란을 피우는 겁니다. 제
 가 남들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이 저를 누구보다 친절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확신만 든다면, 주
 여! 그땐 제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 될까요! 스승님!" (p.87)

"원장 신부님, 제가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고 또 어릿광대 짓을 하고 있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예를 존중하는 기사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명예를 존중하는 기사
 입니다만, 뾰뜨르 알렉산드로비치씨에게는 꽉 막힌 자존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지요. 어쩌면 저는 제 눈
 으로 보고 또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얼마 전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제 아들 알
 렉세이가 구원의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저는 아버지로서 그 애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으며, 또 당연히 걱
 정해야겠지요. 저는 줄곧 들었고 그리고 모습을 드러냈으며 또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공
 연의 마지막 장을 원장님께 보여드리고 싶군요. 우리들은 어찌 되어 있습니까? 우리에겐 뭔가 붕괴된다
 싶으면 벌써 쫙 깔려 있습니다. 우리들이 한번 처한 상황은 영원한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
 요! 저는 일어서고 싶습니다." (p.164)

드미뜨리

"아버지! 나는 내 행위들을 합리화시키지는 않겠어요. 그래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고백하지요. 나는 그 
 대위에게 짐승 같은 짓을 했고, 지금은 후회하고 있으며, 짐승 같은 분노를 터뜨린 자신을 경멸하고 있습
 니다." (p.136)

"나는 살아가면서 내가 악취와 치욕에 빠져 있는지 아니면 광명과 기쁨에 빠져 있는지 모르고 있단다. 바
 로 그것이 불행이지. 왜냐하면 세상만사는 수수께끼이니까! 가장, 가장 깊은 방탕의 치욕 속에 빠져 들 때
 면(나한테는 그런 일만 일어나거든) 나는 언제나 데메테르와 인간을 노래한 이 시를 낭송하지. 그것이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었느냐고? 결코 그렇진 않아! 왜냐하면 나는 까라마조프거든. 왜냐하면 내가 어차피
 심연 속으로 빠져 들 거라면 좌우간 곧바로,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발뒤꿈치를 위로 치켜 올리고 뛰어 내
 리는 거야. 그편이 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런 굴욕스런 상태에 빠져 들면서도 그것을 아름다움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p.196)

"그러자 내 마음속에 심술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돼지 새끼처럼 천하디천한 장사치들이나 하는 장난을
 치고 싶어지더군. 그녀를 경멸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며 바로 이렇게, 그녀가 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동안
 말야. 장사치들이나 하는 말투로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야.
 <웬 빌어먹을 4천! 농담 한번 해본 걸 가지고 대체 당신은 어쩌자는 거요? 아가씨, 너무 경솔하게 판단하
 셨군. 한 2백 정도라면 나도 기꺼이 내드리겠지만 4천이라니, 아가씨, 그건 이런 경솔한 일에 아무렇게나 
 내던질 수 있는 금액이 아니란 말이에요. 공연히 헛수고만 하셨군요.>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그녀는 달아나 버릴 테고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하지만 그 정도면 악랄한 
 복수를 하는 것이고 묵은 빚을 청산하는 셈이기도 하겠지. 나중에 가서 평생 동한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
 르지만 당장은 그런 장난질이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어!" (p.208)

이반

"저는 두 요소의 혼재, 즉 교회와 국가의 본질이 별도로 존재하며, 물론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전제 아래에
 서 출발했습니다. 비록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정상적이며 어느 정도 합의된 상황으로 도저히 이끌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근본에는 거짓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재판과 같은 그런 
 문제에서 국가와 교회 사이의 절충이란, 제 생각으로는, 그것의 완벽하고 순수한 그 본질상 불가능한 것입
 니다. 제가 반박했던 그 성직자는 교회가 국가 내에서 명확하면서도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저는 교회가 국가 전체를 포함해야지 단지 국가의 한구석만을 차지해서는 안 되며,
 만일 지금 현 상태에서 그것이 어떤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현상의 본질상 반드시 기독교 사회 장래의 
 모든 발전에 직접적이며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반론을 폈었습니다." (p.117)

"그런데 당신께 묻습니다만, 파문당한 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때 그는 지금처럼 사람들로부터는 물론
 그리스도로부터도 떠나가야 할 테니. 이렇게 그는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교회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점은 엄격한 의미로 볼 때 지금도 그렇지만, 어
 쨌든 명시화되지는 않고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 범죄자들의 양심은 아주 흔히 자신과 타협하고 있지요.
 '내가 도둑질을 했다고 떠들어 대고 있어. 하지만 나는 교회에 맞서는 것도,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것도 아
 니야'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범죄자들은 끊임없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지만, 교회가 국가를 대신하게 될
 때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부정하지 않는 한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하고, 모두가 바르지 못한 길
 로 가고 있다고 떠들고 있어, 모두가 가짜 교회야. 살인범이자 강도인 나만이 공명정대한 그리스도 교회일
 뿐이야'라는 말은 내뱉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기는 힘들 테니 흔치 않은 상황들, 커다
 란 조건들이 요구됩니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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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용택2011. 5. 25. 00:56

  


이 글을 어떻게 써볼까 한참을 고민했다.

  한참 된 것 같은데 겨우 작년의 일이다. 당시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내가 좋아하던 한 아이가 있었
고 마찬가지로 그 아이를 좋아하던 내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와 내 친구를 둘 다 사랑한다고
했다. 이건 양다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우리 셋은 서로의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는 그들처럼 쿨한 관계가 되지도 못했다. 무지하게 애매하고 치졸한 관계였다.

  어느 날 그 아이가 가출을 했다. 대책없이 나와버려서 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한 동안 내 친구의 자취방
에서 살았다. 그 때 나는 진작에 자취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둘이 한 집에서 사는 꼴을 보고 있기가 참으
로 괴로웠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동거하는 남녀간에 있을 수 있는 어떤 성적인 접촉도 없었다고 한다. 참다행스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화도 났다. 그 아이가 "00는 나한테 그런 짓을 하지 않더라"고 말할 때는, 마치 "그게 너와 걔의 차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인지라, 깊이 얘기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전
의 이야기도 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그 관계 속에서의 '나쁜 놈'이라면 바로 나였다. 나는 진작에 내 친구
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해주겠답시고 그 아이와
자주 만남을 가지다가 다른 마음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잘 되어가던 둘 사이에 나타난 난데없
는 훼방꾼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당연히 내 친구에게 죄책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
게 된 친구가 도리어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그 죄책감은 증오로 바뀌어버렸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표도르 빠블로비치 까라마조프는 이렇게 말했다. "어째서 당신은 
그를 그토록 증오하시오?"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사실 그는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그에게 양심에 꺼리는 짓을 했지요. 그런데 그런 짓을 하고 나자 곧바로 그가 증오스러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왜 내가 표도르 빠블로비치라는 인물로부터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우리는 일
면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인 '수도원 저녁식사' 사건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표도르 빠블로비치는 이미 자신의 일행과 수도원 사람들에게 대단한 실례를 범한 뒤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자중의 의미로 저녁식사에 불참했다. 하지만 그는 수도원을 떠나다 말고 돌아서서 다시 저녁식사 자리에 
나타난다. 그들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결코 좋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표도르 빠블로비
치는 뻔뻔하게 그 자리에 나타난다. 결국 모든 것은 엉망이 되고 안 좋게 끝나버린다. 그는 분명히 그 상황
이 완전하게 망가지기를 바랬기에 그런 돌발행동을 했을 것이다.

 

 


  다시 아까의 얘기로 돌아온다. 그 아이가 내 친구의 집에서 살고 있던 어느 날 밤의 일이다. 나는 그 아이
와 함께 밤까지 바깥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다시 그 아이를 친구네 집으로 들여 보내
야 했다. 죽기 보다 싫은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그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바깥에 혼자 남았
다. 이제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안양에서 인천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나는 갑자기 그 시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졸음과 피로가 쏟아졌고 도저히 2시간 30분이나 버텨서 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더불어 지금쯤 친구의 자취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분명히 내 친구
에게 나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터였다. 그러면 내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둘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밤새 키득거리겠지. 그런데 내가 2시간 30분이나 들여서 집까지 돌아가야 한
다고? 차라리 그 두 사람의 '즐거운 시간'에 갑자기 내가 끼어들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는 내가 분명히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할테고, 내 친구는 아예 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텐데 말
이다.

  그 때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나열하자면, 우선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도저히 해결책을 찾
을 수 없는 상황에서 판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또, 정말 순수하게 궁금한 마음
도 있었다. 내가 거기에 등장하면 그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친구의 자취방으로 갔다. 그리고 대뜸 재워달라고 말한 뒤 대답도 듣지 않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두 사람 모두 아연실색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를 가더라도 저는 누구보다도 비굴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며, 또 모두가 저를 어릿광대 취급을 하
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정말로 어릿광대짓을 해 보이지, 너희들이야말로 모두 나보다 더 어리
석고 더 비굴한 놈들이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 "이제 명예는 회복할 수 없어. 그러니 부끄러워
할 것 없이 놈들에게 다시 한번 침을 뱉어 줘여지. 놈들에게 수치심을 느낄 것 없어. 그래, 그렇게 하자고!"

  그 후의 일은 자세히 얘기할 이유가 없지만, 내가 완전히 처참한 꼴이 되어 끝났다고는 말해둬야겠다. 내가 자초한 일이기도 했고, 원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다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하게 되는) 날이 올지는 모
르겠다. 분명한 건, 더 이상 회복할 수 있는 게 없을 때에만 그런 무모한 용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표도르 
빠블로비치의 경우엔 그것이 이미 오래전에 상실한 '명예'였다. 나의 경우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
겠지만, 막다른 길에서 보여준 최후의 발악이었음은 사실이다. 사람은 자신이 극도로 싫어하는 상황이 되
면, 스스로를 우스운 꼴로 만들어서라도 차라리 그 상황을 '기형적'으로 바꾸게 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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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용택2011. 5. 24. 22:52




흐흐
나에게도 카테고리가 생겼어

저는 옛날부터

언젠가 나의 방이 생긴다면
(난 한번도 내 방을 가져본적이 없어요 여태까지도)
영화 포스터와 앨범 자켓 사진 따위로 도배를 하리라
그리고 벽에 낙서도 하리라
라고 생각해왔지요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방이 생긴거 같아서 좋네요

오늘은 그 유명한 아바타를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구요
역시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아이 씨 유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