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카프카2010. 8. 3. 00:28

  실종자, 카알 로스만

정 철 현

실종자

 실종(失踪)자는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자를 의미한다. 보통 어떤 사람이 실종되면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은 그를 애타게 찾을 것이다. 주로 불의의 사고에 의한 실종, 보통 이러한 실종은 그 사람이 죽었을 높은 가능성을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은 그가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한편 일상에서 실종되었다는 말이 비유적으로 쓰일 때도 있다. 우리가 어떤 친구가 실종되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친구가 요즘 눈에 잘 띠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 친구를 애타게 찾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에 대한 관심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실종자에 대한 마음이 그러하듯 같다.

그 관심은 자신과 함께 생활해 오던 동료 혹은 가족의 부재에 대한 걱정과 염려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와 함께 했던 생활의 일부분들에 대한 그리움, 다시 돌아와 함께 생활하면 좋겠다는 기대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함께 했었고, 그래서 그 누군가가 그를 찾고, 함께 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카프카의 『실종자』에는 이와 또 다른 실종자가 등장한다. 카알 로스만. 하지만 그에게는 실종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다른 이들로부터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그가 어떻게 실종자일 수 있겠는가. 주로 우리가 실종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누군가가 어디로부터 실종되었다라고 말한다. 즉 그 사람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실종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카알은 실종자가 아니다. 그를 실종자라며 관심을 가지고 찾아줄 원래 그가 있었던 자리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는 원래부터 실종자였다. 그가 있을 장소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실종자, 카알 그리고 아메리카

 아메리카. 그곳은 카알에게 어떤 장소도 주지 않았다. 그 장소란 간단히 말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놀고, 쉬고 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는 그러한 공동체 안에 속해, 미국생활에 적응하고 싶었지만 그 곳으로부터 계속 미끄러지게 된다. 옥시덴탈 호텔에서, 외삼촌에게서, 그는 그 안에서 어떤 확실한 지위에 오르고 싶었지만 계속 이곳저곳 떠돌기만 한다. 이렇게 카알이 어느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아다는 것은 아메리카 탓이기도 하고 그가 지닌 상황자체의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공동체 안에서 살고 싶은 카알의 바람, 그러나 그렇지 못한 아메리카 현실.

  그건 중요치 않아요, 우선은 대단치 않은 일을 맡게 될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부지런하고 세심하게 일하여 지위가 높아지도록 해야만 돼요. 좌우간 세상을 방황하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어디엔가 정착하는 것이 당신에게 더 좋고 또 적합할 것 같군요. 내 생각엔 당신은 세상을 떠돌아다닐 체질도 아닌 것 같아요. 134p

  옥시덴탈 호텔의 여주방장은 떠돌아다닌다는 카알에게 호텔에서 일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편히 살기를 권유한다. 여주방장은 카알에게 하찮은 일부터 시작하더라도, 열심히 일한다면 호텔 안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며, 그가 호텔 안에 들어와 일할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여주방장의 말처럼, 옥시덴탈 호텔에서 어떤 확실한 지위에 오르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이곳, 옥시덴탈 호텔은 아메리카라는 기계의 축소판이다. 그곳은 끊임없이 카알에게 호텔에 들어와 일할 것을 권유하면서도, 한편으로 호텔로부터 밀어낸다. 호텔에 들어와서 열심히 일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카알을 꼬신다. 하지만 그러한 꼬심에 넘어가 호텔을 욕망하는 카알은 다시금 호텔에 의해서 내쳐진다. 카알이 호텔 속에 일하기를 바라듯, 아메리카 속에서 일하길 바라는 사람들. 하지만 아메리카는 거대한 기계. 그 기계는 많은 작업량으로 고장이 잦다. 계속 해서 부품을 교체해주어야 한다. 그 부품은 바로 기계 주위를 배회하는 카알 같은 산업예비군들인 것이다.

  카알이 자주 놀란 것은 그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다른 동료들은 현재 자신의 지위에 완전히 만족하여 그것이 일시적인 직업임을-이십 세 이상의 엘리베이터 보이는 고용하지 않았다-전혀 느끼지 못했고 또 장래에는 다른 직업을 결정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한 채, 침대에서 침대로 전해지고 있는 더러운 누더기에 쌓인 탐정소설 외에는 아무것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158p

  아메리카라는 기계, 그것은 카알이 자신을 욕망하게 만들지만, 카알이 그 곳에 들어갈 자리는 마련해주지 않는다. 아니면 잠시 사용했다가, 철저한 규율 하에 다른 부속품으로 대체된다. 철저한 규율 하에 그는 엘리베이터 보이에서 해고되었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러 오클라하마로 간다. 다른 종류의 부품이 되려고 말이다. 이럴 줄 알았을까? 그는 엘리베이터보이를 할 때도, 혹시 모를 훗날을 위해 열심히 상업교본 공부한다.

  또한 카알은 자신 안에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외면적으로, 혹은 거짓으로 그 집단에 수용된 것이며, 그 자신도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믿으며 살아간다. 항상 그가 꿈에 그리고 상상하던 모습대로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어찌됐든 바로 아메리카 시민이 되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눈앞의 모습은 거짓된 유리를 통해서 본 착시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카알이라는 개인 안의 모순이 드러나게 된다. 그 사회에서 받아들어졌다고 착각하는 카알, 그러나 그럴 리가 만무한 현실. 현실과 배치되는 카알 자신의 상상은 그가 바라는 자아의 모습일 것이다. 그가 여러 공동체를 떠돌아다니며 꿈꿔왔던 자기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것은 카알 자신의 존재이유였고, 그것은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이러한 그의 모순적 상황에서 ‘실존적 실종’을 볼 수 있다. 그는 현실 속에서 자아의 상을 계속 해서 잃어나간다.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기계는 카알을 원래부터 실종자이게 했다. 그가 머무를 곳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미국에 발을 들인 순간 그는 실종자가 되었다. 그리고 카알 자신 안의 모순은 그를 영원히 실종자이게 한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종자이다.

 
카알의 존재이유, 아메리카

 그들은 이틀 밤낮 기차를 탔다.…………첫째날에 그들은 높은 산악지대를 가로질러갔다. 푸른 기가 도는 검은 암석덩이들이 뾰족한 쐐기 모양을 하고 기차 쪽으로 다가왔다. ……계곡 물의 찬 기운 때문에 얼굴이 덜덜 떨릴 정도로 계곡이 가까이 있었다. 330p

  카알이 브루넬다의 집에서 나와 오클라하마의 대형극장에 채용되어, 그곳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 마지막 장면에는 새로운 기대감과 앞으로 겪게 될 고단함이 느껴진다. 카알은 아메리카에서 살아가기 위해, 고단한 먼 길을 꿋꿋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연이지만 이 소설의 결말이 나지 않은 채로, 카알이 어딘가로 또 다른 새로운 일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는 멈추지 않고, 그의 새로운 아메리카에서, 아메리카를 위해, 설사 그것이 자신을 밀어낸다 할지라도 아메리카의 당당한 시민이 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끝은 어딜런지.

 
그래서 더욱 더 비참한

 카알이 행동하는 주저없고, 경쾌한 움직임은 더욱더 비참함을 가미시킨다. 그는 독일 집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올 때에도, 외삼촌에게 절연의 편지를 마주할 때도, 옥시덴탈 호텔에서 해고당할 때도 어떤 우울함이나 좌절감을 갖지 않는다. 그는 단지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씩씩하게 나아간다. 그것은 그 당시 아메리카의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자리는 구하기 쉽다. 언제나 누군가 타라는 차를 타면 그곳에 가서 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야콥 운송회사에서 일할 노동자 모집’의 글귀가 붙은 차를 타거나, 오클라하마의 극장 직원 채용공고를 보고 그곳으로 달려가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옥시덴탈에서 해고되듯이 쉽게 해고되고 다른 일자리를 찾고, 그런 식의 무한한 반복. 그래서 좌절하는 것은 그 상황에 맞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카알에게 필요했던 것?

  정의의 문제가 중요한 것같이 보이지만, 동시에 규율의 문제도 중요하지. 40p

  카알은 아메리카에서 적응하기 위해 꿋꿋이 살아가지만 고독하고 외로웠다. 오직 규율만이 지배하는 그 곳은 그의 목을 옭아맨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하건, 그가 얼마나 착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항상 규율만이 그를 평가한다. 계속 그랬다. 규율이 그를 자꾸만 밀어냈다. 독일서 미국으로 쫓겨났을 때에도 그는 하인을 임신시킨 죄로, 외삼촌과 절연하게 된 계기도 그 대단한 외삼촌의 규율과 원칙을 어긴 일로, 옥시덴탈에서 해고당했을 때도 엘리베이터 보이 규칙을 어긴 일로, 그는 평가받았고, 그 모든 곳에서 쫓겨났다. 모두 규율이 그를 평가하고 속박하고, 결국 내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삭막함 속에서 그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온정이었을까?

  너는 저 화부에게 홀린 것 같구나.” “너는 외로움을 느꼈을 테지. 그때 화부를 만났고, 지금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것이지.”42p

침대에 앉아서 깜짝 놀라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을 잠옷 차림의 사랑하는 외삼촌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 사실 자체로는 대단한 일이 못되기는 하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까지 잘 생각해보아야했다. 아마 그는 처음으로 외삼촌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침 식사를 계속하게 되면 지금까지 하루에 단 한 번 하는 것보다 더 자주 자리를 함께 하게 될 것이고, 물론 그러면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69p

  그는 단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했다. 그는 외삼촌에게서도 금전적인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와의 솔직한 대화를 원했다. 그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는 옥시덴탈 호텔에서 그런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만난다. 여주방장과 테레제는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친구이자 어머니 같이 포근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존재는 아버지로 대변되는 엄격함과 규율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시켜준다. 이런 의미에서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은 그가 영원한 실종자가 되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어머니에게 치유받고, 또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치유되고....

 
카알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건

 카알이 오클라하마로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고 『실종자』는 끝이 나는데, 그가 너무 경쾌하게 나아가서 일까? 물론 그 경쾌함 속에 외로움과 두려움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뒷모습이 무언가 미묘한 여운을 준다. 또한 그가 아메리카에 처음 와서 외삼촌 집에 피아노를 쳤던 행위가 그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카알이 소음으로 가득한 하늘을 향해 열린 창 앞에서 고향의 옛 군가를 연주할 때면 그것은 참으로 기묘하게 울렸다. ……그러나 군가를 연주한 후 카알은 거리를 내려다보았는데, 그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것은 순환 속에 작용하는 모든 힘을 알지 못하고는 우리가 그 자체를 정지시킬 수 없는 거대한 순환의 한 조그마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50P

  그는 자주 발코니에 우두커니 서서 길을 잃은 양처럼 거리를 내려다본다. 물론 이것을 삼촌이 불쾌하게 생각해서 그만 두었지만 카알은 이를 매우 즐겼다. 뉴욕의 바쁜 하루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그는 이 뉴욕 거리를 향해, 그 분주함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가득 찬 하늘을 향해 고향의 옛군가를 연주한다. 무언가 변화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 거리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정지시킬 수 없는 거대한 아메리카다. 그래서 외삼촌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두커니 그것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물론 카알은 뉴욕의 거대한 순환 고리 속으로 들어갔지만, 그가 열린 창 앞에서 연주했던 고향의 옛 군가는 그의 마지막 뒷모습에서 은근히 들려온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