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처음 물대포를 맞았을 때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입니다.
미친 듯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걸어왔던 터라 저 정도 물은 장난이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제 순진함이었을까요, 물대포가 정말 ‘물’대포라고 생각했던 것은.
눈물 콧물 흘리며, 뒤에 곤봉 들고 쫓아오는 전경들을 피하려고 정신없이 뒤쪽으로 도망가다 보니, 정신이 멍해지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있던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손발이 색소로 파랗게 된 채 서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전화해보니 다들 얼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온다는, 그래서 도망가야 한다는 그 원초적 공포는 사람을 그렇게 멍하게 만드나 봅니다.
그래도 [희망버스]가 늘 “씨발”들로만 가득 찼던 것은 아닙니다. 그 “씨발”의 전(前)과 후(後)에는 의외의 즐거움과 재미가 있었습니다.(의외가 아닌 당연한?)
부산에 도착해서는 처음 만났던 빈집 식구들, 희사, 잔잔, 여름과 함께 돼지국밥 한 그릇을 안주삼아 시원(C1)을 마셨습니다. 처음 먹어본 돼지국밥은 참 맛있었어요.(비 올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아요.크으)
돼지국밥을 먹고 나오니 빗발은 점점 거세지더군요. 김진숙님을 만나기 위한 행진을 시작했을 때에도 장대비는 계속되었습니다. 장대비 속에서 행진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고.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시위하고, 물대포를 맞고 새벽이 다되니 힘들어서 정말 돌아가고 싶더라구요. 앞으로의 몇 시간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목욕탕에서 씻고, 조금 쉬고 나니. 무엇보다 아침밥 먹고 나니까 좀 살 것 같드만요.
밥하니까 생각나는데,
이번 희망버스를 통해 새삼 알게 된 것은 친구들과 밥의 소중함입니다. 시위현장에서 옆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어찌나 안심이 되는지요. 또 반대로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던지요. 물대포를 쏠 때도 옆에 한 명이라도 친구가 있다면, 눈이 따가워도 참을만 한데, 친구들과 헤어져서 옆에 모르는 우비들만 즐비할 때에는 전경들이 수십배로 무서워지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역시, 사람은 위장이 비면 안 됩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지라우.
저에게 부산은 이렇게 다시 한 번 기억됩니다.
밀면, 해운대, 피프 광장, 여름과 해변의 도시가 아니라
돼지국밥, 소주, 영도다리, 장대비, 물대포, 노래, 85호 크레인,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7천 명의 ‘꽃’들이 함께 있었던 곳으로 말입니다.
요즘 연극하는 백지, 투애니곰에서도 소통이라는 화제가 심심찮게 등장했는데요.
이번 희망버스를 통해서 제가 소통할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 중 한 단면을 보았습니다.
(부산가는 버스에서 읽었던 김진숙님의「소금꽃나무」도 여러 생각을 하게 했는데, 이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써보고 싶네요.)
제 몸 속에 잠자고 있던 ‘분노’세포가 조금씩 깨어나는 걸 느낍니다.
물론 감정뿐만 아니라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 이렇게 적어놓으니,
여행후기의 느낌이여서, 많은 것을 담아내지 못하는 제 문장들이 한탄스럽기 그지없네요.
신발을 몇 번씩 물에 씻어도 파란 색소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래도 물대포 색소가 파래서 다행입니다. 전 파란색을 좋아하거든요.
이번 여름 처음으로 수박을 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직접 수박 한 통을 사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고생한 제 자신에게 주려구요. 친구들도 다들 잘 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몇장 찍었는데, 밧데리도 없고 비도 많이 와서 거의 못 찍었어요.
희사, 잔잔, 여름. 잘나온 사진이 거의 없지만, 곧 블로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다들 고생많았어요. 토요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