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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명연습2011. 6. 28. 20:52

2NE곰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에세이

그, 얼굴들


첫 번째 유대인

  나치와 유대인,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에 대한 수많은 일화들. 권장도서 목록에서 「안네의 일기」를 너무 자주 봤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유대인, 이 많은 ‘안네들’의 삶이 이성적인 수준 이상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재현은 왜인지 모르게 지나치게 감동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잔혹했다. 그래서 늘 나에게 남는 것은 감동과 안타까움, 놀람과 경악의 ‘감정들’이었다. 장편 역사책의 흐릿한 사진처럼, 추상적인 느낌들로 말이다. 그러던 나에게 유대인들을 하나의 ‘얼굴’로 각인시킨 것은 이 하나의 그림이었다.



   이 그림의 제목은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서경식 씨는 이 그림에 대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절체절명의 벽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마지막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막다른 곳에 몰린 유대인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 관헌을 되돌아본다. 그런데 이 남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침착하다. 그의 눈에는 자신이 잡혔다는 공포나, 놀람 보다는 체념이나 서글픔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감정이 담겨있다. 이 남자의 눈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유대인’이다.

구조된 사람과 익사한 사람

“수용소는 게르만식 사회구조 한가운데서 시간제한 없이 우리에게 부과된 존재방식일 뿐이다.(125)”

  어떠한 상황에서 내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 적을수록, 실낱같은 희망이나,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어진다. 만약 극도의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프리모 레비가 묘사한 수용소의 삶처럼 그것이 “존재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공간에 내던져진 사람들은 나치당이 혹은 과연 자신들이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탄식을 내뱉게 된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그들의 탄식이 나에게는 이것이 과연 인간이구나, 로 읽혀지게 된다. 수용소라는 같은 “존재방식”을 살아가지만, 해프틀링들의 팔에 찍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인간들이 각자의 궤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는 이들의 유형을 크게 둘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하지만 다음 사실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인간들을 뚜렷하게 구별 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구조된 사람과 익사한 사람이라는 범주다 (132)”

  구조된 사람과 익사한 사람. 쉽게 생각하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 그렇지 못한 자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익사자, 수용소의 척추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체되면서도 늘 똑같은, 침묵 속에 행진하고 힘들게 노동하는 익명의 군중, 비인간들이다.(136)”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의지가 한순간도 발현될 기회 없이 생을 마감한 이들, 수용소라는 늪에서 익사해버린 자들을 이야기한다. “얼굴 없는 그들의 존재”로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다고 말이다.

  어찌되었건 프리모는 살아남았으며, 생존 경쟁에서 구조된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그것이 천부적인 능력이든 노력이든 간에, 사실상 스스로를 ‘치열하게 구조해낸’ 사람들이다. 프리모의 그들에 대한 각각의 묘사는 놀라울 정도이다. 그들의 ‘능력’은 인간의 생존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수용소의 생존이란 인간에 대한 어떤 미화도 없이 철저하게 발가벗겨낸 생존 그 자체이니 말이다.

  외모, 기본적으로 타고난 골격과 힘, 선천적인 잔혹한 성품 혹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 이 요소들을 무엇이라 지칭해야 하나. 좀 더 구체적 예를 들자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철저하게 이미지를 관리한다. 사람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자신에게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친절하지만 결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등등. 이런 처세의 방식들 앞에 나는 생존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생존이라는 이 명백한 단어 앞에서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늘 이러한 것들이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일종의 ‘가식’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와는 크게 동떨어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유유히 피해갈 수 있는 개똥과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연히 개똥을 밟고 황망히 걸음을 멈추었던 예전 어느 날 아침처럼, 이 책을 덮고 나는 그런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추가된 몇몇의 새로운 얼굴들을 떠올린다. 내가 혐오하는 그 ‘비인간적’인 것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의 얼굴을 말이다.

  만약 내가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면, 어떤 해프틀링이 되었을지, 생각해본다. 그 “존재방식” 속에서 나의 얼굴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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