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잔잔2013. 11. 13. 16:39

 

선은이가 지현이 전주못온다는 글 백지에 남겼다는 얘기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저는 굴파고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2월에 이음이 동생 여울이가 나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쪽파랑 알타리랑 무다듬어서 총각김치 담았어요. 생각이 많아지고 굴을 파고 들어갈거 같은 느낌이 올때 단순하고 좋은 향이 나는 작업을 하며 시간 보내는 걸 추천해봅니다. ^^

아마 두달정도 뒤에 푹 익은 총각김치를 먹으며, 아 이걸 담던 때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더라지, 하고 냠냠쩝쩝하겠죠. 흠 아무튼.

 

어제 우연히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시 봤어요.

제가 엄청 좋아했던 영화에요. 보고나서 마지막 대사를 외워뒀는데 아직도 툭치면 그 대사를 읊을수 있답니다.

뭐랄까. 짝사랑만 주구장창하며 지내던 그런 날들을 보내던 중에 '사랑' 그것도 '영원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같은 걸 가지며 가슴에 깊이 묻어두었더라죠.

줄거리를 다 알거라 여기고 대충 얘기하자면 첫눈에 반한 두남녀의 사랑이야기에요. 순수하고 풋풋한 느낌이 막 나죠. 조소과 여학생과 국문과 남학생의 러브스토리. 그러다 남학생이 군대를 가던 날 여학생이 마중나오다 트럭에 치여 죽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남학생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애낳고 살고 국어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에 한 남학생이 지나간 첫사랑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말과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이 환생한 그녀라고 믿고 사랑합니다. 당연히 학교에 소문이 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리게 했던 그 남학생도 자신의 전생을 자각하고 선생님을 찾아 함께 떠납니다. 뉴질랜드에 번지점프를 하러말입니다. 줄없이요. 영화부제가 bungee jumping of their own 이에요. 그들 자신속으로 번지점프를 하다, 인가요.

 

영화줄거리는 이만 할게요. 아마 예전에 처음 봤을 때 줄거리를 썼다면 더 아름답게 썼을 거에요. 대사도 막 인용해가면서 말이죠. 사실 아름다운 영화에요! ^^

그런데 늙어가며 삐딱해져서 그런가. 영화결말이 엄청 거슬리더라구요. 어제밤내내 생각나고 결국 오늘 아침엔 한마디라도 적어둬야겠다 싶을 정도로요. 웃기죠.

뭐가 거슬렸냐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인생을, 삶을 너무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인생에게 무례하다고 해야할까요. 몇번을 태어나고 죽어도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는 그럴 수도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사람과만 행복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건 이해가 안되고 화가 나네요. 주인공 남자가 교사가 되서 만난 반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연으로 우리가 이 교실에 앉아 서로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엄청난 인연을 무시하고 죽음으로 끝내는 건 뭔가요, 싶은 겁니다. (물론 그 절벽아래로 뛰어내려도 끝이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지만 그 이후에 환생한 삶은 별개의 또 다른 삶인거죠)

사회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동성애라는 이름으로 핍박받으니 죽어서 다시 환생해서 만나자.

결말이 이렇게 읽혔어요. 너무 삐딱한가. 흠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결말은 뭘까요.

 

주어진 생애 내에서 다시 만난 자신의 사랑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나머지를 살아가는 겁니다.

 

물론 아마 그런 결말이었다면 영화주제가 틀어질수도 있겠죠. 근데 저는 동성애에 집중하고픈 게 아니라

그냥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글을 마구 휘갈기며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왜 이 결말에 흥분했는가.

 

아마 나는 열심히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아름답게 손을 꼭잡고 번지점프를 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에 질투가 났나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매일 이음이와 꼭 붙어 비슷비슷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물론 아주 꼼꼼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다르지만..........................그런 게 보이는 날들은 손에 꼽고요.

다들 어찌 지내나요?

지현이는 저번에 얼굴 봤는데 취업준비로 그리고 맏딸로 서느라 애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살도 많이 빠져보였고요.

다른 친구들은 곰쌤 결혼식때 보겠죠. 그럼 그때 봅시다.

글 쓰면서 급흥분했다 혼자 가라앉히고 내려갑니다. 안녕.

 

Posted by  잔잔
에세이/희사2013. 10. 30. 22:28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에요~. 희사입니다^^

지난 번에 글 썼던 게 봄인데 벌써 가을이네요.. 시간이 가는 게 정말 빠릅니다..

 

전 지난 9월에 대학원 입시를 끝내서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입시를 마치고 나서는 아르바하고 활동하고 친구 만나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년동안 자도 깨도 공부였으니 그런지 이젠 책은 보기 싫습니다ㅎ

시험이 끊나면 이런저런 책 읽자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 쪽으로 마음이 가지 않네요.

그래서 이젠 책쪽은 포기하고 지금 제가 빠지고 있는 게 바로

 

드라마입니다.

 

사실 전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드라마를 그지 보지 않았고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갔다오고나서는 제 눈이 그 쪽으로 열렸지요 ㅎㅎㅎ

그리고 드라마가 어쩜 그렇게 인간에 대해 여러가지 알려주는지요.

예전에 이런걸 모르고 살았던 내가 안타깝습니다

이번엔 제가 한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본 드라마들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여러분의 감상도 들어보고 싶고, 제가 본 드라마야 여러분은 다 봤을 것 같지만 볼만한 드라마가 있으면 서로 알려 줄 수 있으면 좋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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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처음 본 드라마는 

공효진과 이선균이 출연한 파스타 입니다.

 

 



이건 보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방송 당시 전 수유너머에 가기 전에 같이 살던 친구와 같이 가끔 보곤 했었어요.

발란하고 귀여원 느낌이 좋아서 일본에 돌아오고 나서 봤습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둘이 참 귀엽게 생긴 게 마음에 들었어요.

, 얼굴이 귀엽다는 뜻이 아니라(귀엽긴 하지만ㅎ) 하는 행동이나 말투, 생각들이 귀여웠습니다.

무툭툭하면서도 프로의식이 강하고 다정한 최현욱(이선균)과 소박하고 열심히 셰프를 따라다니는 서유경(공효진)이 잘 어울렀죠.

근데 마지막에 하나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성유경의 유학에 대한 결심 말입니다.

전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서유경에게 단순히 감동했어요

나랑 많이 다르구나..하는 느낌도 들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여자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건... 뭐 어떤 드라마를 봐도 그럼 느낌은 받지만요지금 나에게 있어 드라마의 힘이라는 건 내가 할 수 없거나 살 수 없는 삶을 보여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같아요.

그런데 성유경은 좀 많이 참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여자는 많이 희생하는데 남자는 안 그래 보이는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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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겨우 하나만 썼는데 이번엔 이만 해야겠어요..ㅎㅎ

 또 생각날 때 다음 드라마 얘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도 좋은 날들을 보내시길. 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잔잔2013. 5. 6. 21:07

 

4월의 육아일기는 짧게 업뎃하고 지현이가 제안하고 선은이가 불을 지른 버킷리스트만들어보고자 다시 컴터앞에 앉습니다. 분명히 육아일기 쓰고 바로 앉아서 이 창을 띄워놓고 있었는데......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요즘 진짜 정신이 없어요. 오뉴월에 개도 안걸리는 감기로 시름시름 앓고 있으려니 더욱 정신이 없네요ㅜㅜ 그동안 꽃시장돌아다니고 동대문에 천떼러 다녀오고 닥나무에서 뽑은 실로 만든 한지드레스2차가봉도 체크하러 갔다오고..이음이도 쫓아다니느라 힘들었을 텐데...이음인 저보다 건강한가봐요. 아프지도 않고 씩씩하게 늦잠자는 엄마를 뒤로하고 거실로 나가더니

두루마리 휴지 하나로 신발장에서 열심히 놀았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요새 아침마다 굿모닝팝스하나씩 듣고 있어요. 새벽6시에 하는 본방은 절대들을 수 없고, 걍 다운받아서 쌩쌩이랑 같이 듣고 있슴니다^^; 버킷리스트가 영어잖아요. busket list 버킷은 양동이란 뜻인데 왜 양동이 목록이 죽기전에 꼭 하고싶은 일의 목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흠 궁금하군. 암튼 그래서 영어로 제목써봤어요. 드로우 업 어 버킷 리스트! 

 

1. <The little prince>번역하기. 어린왕자는 아큐정전다음으로 제가 여러번 읽은 책일거에요. ^^ 이음이가 뱃속에 있을때도 한글번역책 한 번, 영어번역책 한 번씩 소리내서 읽어줬다죠. 영어조기교육은 아니고요, 한글로 된것만 보다가 영어번역된 거 보니까 뭔가 느낌이 훨씬 더 맹랑하고 섬세한 것 같더라고요. 한문단씩 공책에 옮겨쓴담에 다시 내 말로 바꿔보고 있어요. 요거 다해보면 나중에 원서, 불어로 된 어린왕자를 읽어보고 싶네욧!

 

2. 스케치북이랑 펜들고 국내 도보or 자전거 여행하기. 아 생각만하여도 가슴설렙니다. 서울에서 1번국도를 쭉 따라걸으면 부산까지 간다던데.훗. 이음이가 많이 크면 같이 할 수도 있으려나..^^;

 

3. 작은 온실 작업실 만들기. 비닐하우스로 된 꽃가게들 들어가본적 있죠? 들어가면 습도와 온도가 향기가 너무 좋아요. 따뜻하니 잠도 잘 올 거 같고. 나중에 꼭 온실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꽃도 가꾸고 나무도 가꾸고 저도 가꾸며 살고 싶어요. 거기서 노래도 부르고 글도쓰고, 차도 마시고.. 옛날엔 정원을 가꾸고 싶었는데 이젠 좀더 아지트느낌이 나는 온실을 가꿔보고 싶어졌어요.

 

일단 이렇게 세가지 적어두고 갑니다. 모두 엄마되고 나서 생긴 버킷리스트네요. 또 하고픈 일들이 생기면 요기에 업뎃해둬야겠어요. 한 오십년 흐른뒤에 몇개나 했을까 체크해보면 재밌겠다! ㅎㅎㅎ 그럼 좋은 밤^^

 

 

으억, 결혼식이 이제 2주도 안남았네요. 흐헑.

Posted by  잔잔
에세이/잔잔2013. 4. 30. 12:24

 

 

 

2012년 6월 18일 새벽 6시 8분 이음이가 태어났다. 뱃속에서 살짝 하늘을 보고 있던 탓에 이음이가 나오기까지 2박3일이 걸렸다. 진통이 계속 되는 와중에도 병원에 가기 싫었던 나는 쪼그려앉았다 일어서기, 걷기등의 운동을 하며 이음이가 어서 나와주기를 기도했다. 전날 밤 9시에 양수가 터졌고 밤새 나는 엄청난 진통과 씨름하며 새벽녘에 머리가 꼬깔콘처럼 눌려서 나온 이음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음이가 나오고 나는 거의 실신했다. 사진속의 나는 '아 이 아이가 내 뱃속에서 자라 나오다니! 신기해' 하는 표정으로 이음이를 보고 있다.

 

힘들고 아팠던 출산의 과정과 더불어 이 작고 여린 아가를 씻기고 재우고 먹이고 달래면서 나는 모성애라는 엄청난 힘으로 이음이에게 집중했다.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몸은 점점 회복되고 나는 슬슬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두며 이음이에 대한 관심의 비중이 9할에서 8할로, 그리고 7할로 줄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이음이도 눈을 뜨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세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음이가 제일 관심을 두었던 세상은 엄마, 라는 세상이었다. 엄마가 말할 때 움직이는 입, 깜빡이는 눈과 눈동자, 엄마 손의 움직임을 좇으며 따라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엄마를 향해 고정된 이음이의 표정

아마 어느 순간부터 이음이는 엄마인 나의 모오든 움직임과 더불어 미세한 감정변화에도 집중하며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엄마인 내가 이음이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음이가 나를 더 사랑하고 있음을 의식한 적 없이 반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이음이는 나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오든 것을 다해 온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마치 쌩쌩에게 사랑받는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기분,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사랑받는 처자들처럼 예뻐져야하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이 태어나 처음 배우는 것은 바로 아낌없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음이는 게으르고 한심한 순간의 나도, 바쁜척하며 이음이를 조금 귀찮게 생각하는 순간의 나도, 안된다고 소리치는 나도, 재밌는 책이나 게임에 빠져 깔깔대는 나도....모두 사랑한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것, 어쩌면 나는 내가 이음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랑은 또 다시 다른 어떤것,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가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서로가 충분히 넘치는 사랑을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곤하고 고될때도 많지만 그래도 엄마가 홀로 육아와 씨름한다는 말은 이제 나에게 없는 문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음이를 목욕시키고 나서 찍은 사진. 힘이 더 세진 이음이를 목욕시키는 데에 점점 더 많은 힘이 필요해진다^^

Posted by  잔잔
에세이/생명연습2013. 4. 27. 21:34


근황, 다들 잘 지내나요.


 

너무 오랜만이죠.

한 번 마감을 놓치니 계속 눈팅만 하고 막상 글 올리는 걸 차일피일 미루게 되더라구요. 죄송합니다. 그 사이에 올리신 글들 열심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이제 학교 시험이 끝나고 혼자 푹 쉬고 있습니다. 중간고사를 치루고 났더니 4월이 벌써 끝을 보이고 있네요. 나의 사월은 어디로 어느새 벌써 흘러가버렸나. 곧 오월인데 말이죠.

 

원래 시험기간이 되면 온갖 잡생각이 몰려들게 되는데, 이번 시험기간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학교를 떠날 날이 가까워 오는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좀 추상적인 것까지요. ‘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 괜히 이것저것 책이나 강연을 기웃거리고 있네요.

 

요즘은 팟캐스트로 <벙커1 특강>, 그 중 강신주 선생님의 강의를 반복 재생해서 듣고 있어요. 직접 가서 듣고 싶은데, 금요일 수업이 늦게 끝나서 말이죠. 언제쯤 갈 수 있을까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이럴 땐 참 서울에 살고 싶네요.

 

원래는 이 <벙커1 특강>에서부터 시작해서 제가 자주 듣는 팟캐스트 방송들을 차례로 소개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험 공부하던 중 아이폰 사진들을 쭉 훑어보다가 제가 오래전에 캡쳐해두었던 글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런 고로, 팟캐스트 방송에 관한 내용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네요. 제가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것은 <소설가의 일>이라는 연재 글입니다.


 

<소설가의 일>, 스토리(story)와 그 후

 

지금은 연재가 끝났지만 네이버 문학동네 까페에서 <소설가의 일>이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2012229일부터 시작해서 2013129, 매주 화요일마다 김연수 작가님이 연재하셨었죠. 그 당시 매일 웹툰을 기다리듯 화요일마다 이 연재를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떤 자기계발서나 동기유발 강연에서 듣는 이야기보다 <소설가의 일>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 소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소설가의 일>은 제게 좀 특별합니다. 막상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사는 건 이런 것이다, 이런 주제들을 전면에 세운 것도 아니고 제목 그대로 소설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요.

때때로는 가볍게 읽은 에피소드들도 있고, 몇몇은 마음에 깊게 남아서 캡쳐해서 폰으로 자주 들여다본 구절들도 있어요. 제가 <소설가의 일>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이런 것이에요.

 

과연 하나의 스토리(story)로서 나의 삶은 어떠한?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소설가의 일> 내용을 우선 볼까요.

 



-「이 삶이 너의 이야기라면, 넌 최대한의 너를 원해야만 해(2012. 04.10)」중에서-


영화나 소설에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사건, 어떠한 액션들이 발생한다는 의미하죠. 만약 아무런 사건도 없다면 그 영화, 소설은 그저 정지되어있는 장면, 책장에 불과하겠지요. 사건이 쌓여 시간을 밀고 간다, 그러한 것이죠.

제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하루 사는 것도 그와 비슷하게 그럭저럭 인데요. 누구와 싸우는 것도 싫어하고,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마찰 없이 넘어가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요즘 팟캐스트로 하도 상담코너를 많이 들었더니 갑자기 상담 사연모드가 되네요) 변화를 싫어하고 그다지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게 사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게 스스로가 지겨울 때가 있잖아요. 별로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지루할 때. 이야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일상은 거의 정지에 가까운 삶일지도 몰라요. 책장이 아주 느릿느릿 넘어가는 거죠. 무언가를 겪지 않으면, 계속 같은 제 자신으로 살아가니까요.

 

작년 가을인가요, 겨울이었던가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턱을 달달 떨면서 머리를 쥐어뜯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거 잘못하는 게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이 구절을 혼자 되새겼습니다. 뭐 어때, 결론은 해피 엔딩 아니면, 새드 엔딩인데.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이야기의 차원에서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든 얻지 않든 신경쓰지 않는다.” 이 구절이 제 마음에 박혀있던 시절이었으니까요물론 그 당시 제가 몰랐던 것은, 현실은 소설보다 어처구니없고, 드라마보다 구질구질하게 엔딩을 맺더라는 것이었죠. 참 만만하지 않고 먹먹하더라구요. 망할 놈의 엔딩들은 말이죠. 할리우드 가족영화와 달리 해피엔딩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로구나. 나 같은 인간들의 경우 새드 엔딩이 더 많구나. 소설과 현실이 다른 점은, 소설은 엔딩이 나면 책장을 덮으면 끝이지만, 현실은 엔딩 이후에도 계속되잖아요. 엔딩을 떠안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이 어떤 종류로 끝을 맺던 간에, 새로운 사건에 빠져들 때마다, 오랜만에 저는 제가 살아있다, 라는 자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늘 주위를 관조의 시선으로, 그 표면으로만 미끄러지며 살다가, 세상에 직접 뛰어들게 되니, 많이 당황스럽고, 힘들더라구요.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엔딩이 끝나고 난 후,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 본 제 자신은, 그 사건을 겪기 전의 나와는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이름이 붙여진 이야기'의 챕터가 한 장씩 늘어난 셈이니까요. 그 뒤로도 저는 <소설가의 일>의 글들을 떠올리며 시도했던 몇 번의 사건들을 통해 그 중 8할은 새드 엔딩을 겪고, 밤마다 후회와 쪽팔림에 이불을 걷어차곤 했습니다만, 간간히 소소하게 해피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때로는(특히 요즘은) 살아있는 게 지쳐서, 그냥 깜깜한 심해 속에 있듯 죽어지내기도 합니다.

 

<소설가의 일>의 많은 글 중 아주 일부를 소개해드려서 아쉽지만, 아마 직접 읽어보시는 것이 더 재미있으실 거예요. 제 얘기를 더 많이 했네요.

 

요즘 피로를 많이 느낍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요.

 

 

<소설가의 일> 중 한 부분을 발췌하며 글을 마칩니다. 오월에 다들 얼굴을 볼 수 있겠네요.



롯의 시간은 어떻게 측정하는가그건 행동의 숫자로 측정한다하나의 행동을 하면 시간이 조금 진행된다또하나의 행동을 하면시간이 조금 더 진행한다그래서 플롯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자면많은 일들이 일어난 삶과 별다른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삶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많은 일들이 일어난 삶 쪽이 훨씬 더 미래에 가있다내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느냐는 오직 내가 하는 행동의 숫자에 달려 있는 셈이다. ‘making’이라는 건 바로 이런 뜻이다대장장이가 망치로 내리치면서 조금씩 낫을 만들어가듯이우리는 행위를 통해서 어떤 존재가 되어간다.


-어제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더 많은 일들을 하기를(2012.06.05.) 중에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