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이의 기상시간은 보통 6시에서 8시사이. 몸이 아프지 않다면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난다. 그리고 자고 있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보거나 때려본다. 그래도 엄마가 일어나지 않으면 혼자 논다. 주로 방안에 있는 장난감피아노를 치고 놀거나 자기서랍을 열어 옷이나 수건을 죄다 꺼내놓거나 개켜진 기저귀를 펼쳐놓거나 화장대수납장을 빼 놓으며 논다. 그러는 중에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면 길게는 1시간까지 그렇게 놀수있다. 그러다 혼자놀기 한계에 다다른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엄마를 깨운다. 때리고 꼬집고 칭얼칭얼. 그럼 나는 일어나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조끼를 입히고 목수건을 해주고 양말을 신겨 거실로 나온다.
내가 전날 밤잠을 설쳐 피곤한 경우엔 쌩쌩이를 깨워 이음이를 맡기고 나는 30분에서 1시간정도 더 잔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일어나서 아침먹을 준비를 한다. 7개월부터 본격 이유식을 시작한 이음이의 밥도 만들어야 한다. 얼마전부터는 젖먹는 것에서 배부름을 얻는 것 외의 다른 배부름을 요구하고 있다. 낮잠자고 일어나 오후가 되면 나를 주방으로 이끈다. 밥을 달라는 것이다.
아침에도 그렇다. 젖먹고 거실에서 좀 놀다가 나와 썡쌩이 아침을 먹으려 하면, 이젠 꼭 자기도 먹어야 한단다. 그래서 식탁은 늘 정신없다.
전에는 쌀을 불렸다가 갈아서 미음을 써줬는데 아랫니 두개가 나면서부터는 그냥 한 밥에 애호박이나 시금치, 연근, 쇠고기, 브로콜리, 감자 등을 잘게 썰어 물과 함께 넣어 푹 퍼지게 끓여서 먹인다. 간은 하지 않는다. 엄마 입맛에는 싱겁고 맹숭맹숭하지만 고맙게도 이음이는 맛있게 잘 받아먹는다. 이음이가 밥이나 먹을 걸 거부한다면 그것은 몸이 아프다는 것. 신기하게도 조금 열이나거나 감기기운이 있으면 잘 안먹는다. 아무래도 몸이 아픈 곳 치료에만 집중하겠다는 표시겠지. 아무튼 이음이는 잘 먹는다!
특히 한동안 엄마아빠의 숟가락, 젓가락질을 유심히 살피더니 요즘은 직접 숟가락질을 한다.
숟가락질.
숟가락질!
나는 이음이가 숟가락질 하는 모습이 좋다. 숟가락을 쥐고 거꾸로 먹기도 하고 옳게 먹기도 하는데 아무튼 굉장히 집중해서 숟가락을 그릇에 한 번 댔다가 얼굴에 한번 댔다가 그런다. 그 모습이 뭔가 멋있다. 한번은 저녁밥을 먹이다 몰래 동영상을 찍어두기도 했다. 자기가 한 숟가락질을 통해 밥을 조금이라도 먹게되면 내가 먹여줬을때보다 더욱 기쁜 듯 쩝쩝 거리면서 먹는다.
아무래도 이음이의 숟가락질이 내게 멋져보이는 이유는 나는 아무생각없이 무심코 하는 일, 수저를 들어 밥을 퍼 내 입으로 날으는 일을 이음이는 매우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특별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이음이가 새롭게 시도하는 많은 일들은 그러한 이유로 앞으로의 내게 늘 감동이 될터.
딸기를 손에 쥐고 으깨고 있다 딱딱한 과일은 아직 씹을 수없어 켁켁거리지만 말랑말랑한 딸기는 만만한 이음이!
이렇게 하루 두번에서 세번정도 숟가락질을 하고 나면 집안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물론 잠깐이지만. 내가 홀로 다른 짓(!)을 해도 이음이가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할일(!)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나대로 이음이는 이음이대로의 시간이 잠깐동안 이어진다. 서로가 저기에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은체로 자기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을 평화라고 생각한다. 지금 집에서 가질 수 있는 이음과 나의 평화. 생각해보니 평화라는 말도 그렇다. 밥을 나눠 먹는 게 평화平和다. 수확한 벼禾를 고르게平 나눠 먹는 것口. 물론 그렇게 서로 밥을 나눠 먹고 오는 평화는 잠깐이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그 잠깐의 시간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비단 이음과 나만의 평화만 그러할까. 거시적안목의 평화도(!) 밥을 나눠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갑자기 멀리갔다. 간김에 더 가볼까. 요즘 유행이라는 '먹방(먹는방송)'도 어쩌면...음. 돌아와야겠다.
다먹은 빈그릇을 들고 좋아하는 이음이 얼굴에 평화가 한 가득 보인다!
마무리로 시 한편 더해본다.
꽃으로 시작하다
이영식
네 살배기 처조카 꼬맹이가 숟가락질을 한다
장난감처럼 작은 수저로 밥덩이를 실어 나른다
흰밥을 수북이 떠 입가로 가져가지만
밥알은 절반 넘게 숟가락 밖으로 뛰어내린다
아이는 무릎이며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줍지 않는다
밥을 얻기 위해 한 삽의 무엇도 해본 적 없는
조그마한 입에 밥은 목적이 아니다, 놀이다!
하나의 동선으로 이어지는 저 지극함
내 풍진 묻은 손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장난감 나라 먼 축제처럼 보인다
아이가 떨어진 밥알을 방바닥에 으깨어 붙인다
한두 송이 이팝나무 꽃으로 피어난다
희망처럼 씹었지만 비굴이 되기도 하는 밥
볼에 핀 밥풀을 떼어 먹는다, 아이는
기나긴 여정의 발원지이자 종점인 숟가락질을
꽃으로 시작하고 있다.
<현대시, 2010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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