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잔잔2011. 5. 25. 00:00

역사와 관계 맺는 방법

-시왕을 한한을 통해 생각해보기-

1

20세기 초 중국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사람아 아 사람아>의 주인공들은 사랑과 신념 속에서 방황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방황과 고통이 정리되기 전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소설 속에서 ‘시왕’은 그런 주인공들의 다음 세대다. 내가 그에게 주목한 건 어쩌면 그 속에서 얼핏 내가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왕의 아버지 시류는 당대표로 혁명의 우두머리였다. 하지만 지나간 혁명의 구호를 맹목하게 된 시류는 사상해방이라는 또 다른 혁명의 적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시왕은 아버지를 등지고 변화하는 흐름으로 몸을 던진다. 아니 던지는 듯 보였다.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뿐이죠.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자식이죠. 조국과 인민의 경험은 즉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 경험에서부터 태어난 모든 문제를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책임이며 권리이기도 하지요. (114)

대학에서의 공부도, 외국 유학도, 하고 있는 모든 일의 목적이 ‘중국의 개조’라는 시왕의 비장한 결의가 표현된 이 여섯 개의 문장이 나에게 왔다. 그는 피 끓는 젊은이답게 과격했다. 저쪽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군자의 예를 다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덤벼든다. 시왕에게는 역사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중국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들에 불과하다. 그는 하루 빨리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편으로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왕이 역사를 보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는 마치 역사 밖에 서서 역사를 보는 듯하다. 관조를 통해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왕의 그러한 역사인식 태도에선 문제만 보인다!는 게 문제다. 그 모순되고 괴로움 속에서 “사람아, 아 사람아”를 외치면서도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 인간들 그리고 그 다양한 인간들이 갖는 개성은 볼 수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사상에 부합하는 인물에게만 인간의 개성이 있고 그 개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르나 소설에서 시왕의 이야기에 대한 마무리는 없다. 사실 그 마무리, 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러나 시왕의 앞으로를 좀 더 상상해볼 수는 있을 듯하다. 그는 자신의 사상과 그 사상을 실천하는 방법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또한 그 방향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승리 내지는 어떤 성취감을 맛보는 경험(확정되진 않았지만 마무리에서 긍정적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던 호젠후의 책 출판)을 얻었다. 이로써 시왕이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건 아닌지 약간의 과장된 걱정마저 들 정도다.


2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데 좀 더 힘을 싣는 방향으로 가려면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걸까? 고민을 해보다 두 가지정도를 찾았다. 하나는 시왕과 같은 또 다른 2세대인 주인공 손유에의 딸 ‘한한’에게서 또 다른 하나는 김승옥의 단편소설 <역사力士>에 등장하는 ‘서씨’에게서다.

한한은 부모의 이혼이라는 괴로운 역사를 품으며 모순적인 엄격함을 지닌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한한은 그런 역사가 무겁기만 하다. 아직 내 땅위에 무엇을 키워 먹을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쓰디 쓴 오이가 이미 수확되어 바구니 속에 있는 것이, 억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린 한한은 그 속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 간다. 한한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슬퍼한다. 어떤 부분에선 놀라울 만큼 어머니 손유에를 공감하며 포용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용서를 구하며 어머니를 찾아오고, 어머니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한한은 자신을 ‘새로운 인간’으로 변하도록 애쓴다. “자기를 새로운 인간으로 변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도태시킬 거예요!(435)”

물론 시왕이 보는 중국의 역사와 한한이 마주한 자신의 역사는 다른 층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이미 쌓여진 어떤 것, 그러니까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둘 다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인 김승옥의 단편 소설 <역사力士>에 등장하는 서씨에 대해서는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다른 책이기도 하고. 그런데 서씨가 계속계속 생각이 나서 별 수 없이 써본다. 나 서씨에게 반한건가 (웃음).  서씨는 소설의 주인공이 허름한 하숙집에서 만난 힘이 아주 센 막노동자다. 우연찮게 서씨와 만남을 갖게 된 주인공은 서씨의 내막을 알게 된다. 서씨의 선조들은 대대로 역사力士였다.

서씨는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한밤중을 택하고 동대문의 성벽에서 그 힘이 유지되고 있음을 명부의 선조들에게 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낮에 서씨가, 동대문의 바로 곁에 서서 행인들 중 누구 한 사람도 성벽을 이루고 있는 돌 한 개의 위치 변화에 관심을 보내지 않고 지나다닐 때, 옮겨진 돌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역사力士, 김승옥)

뭐라 정의 할 순 없지만  서씨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역사와 관계를 맺으며 산다. 맞서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않는 방법. 참 어렵겠고 또 묘하지만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영원과 순간의 동시적 구현, 인간’, 이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어떤 존재든지 존재는 백지이면서, 백지일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혹은 낯선 그림을 즐겁게 그려갈 수 있다면 백지이면서 백지아님의 역사와 즐겁게 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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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잔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