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E곰 다이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에세이#2
씨리우, 그 사람의 의미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붙이며, 혹은 그 붙여질 의미를 상상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의미라는 것은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나 절실하게, 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를 생각하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의미 없는 삶’이란 인간에게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견딜 수 없음 때문에, 사람은 때로 ‘의미’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놓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해보곤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작가는 각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래서 그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녀는, 혹은 그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이다.
소설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의미’를 되새긴다. 사실 나는 허징후, 정확히 말하면 작가 다이허우잉이 말하는 ‘뜨거운 휴머니즘’이랄지. 계급 투쟁, 노선 투쟁 등등의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말하고 싶은 ‘인간’에 대해서는 말이다. 아마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쑨위에나 허징후가 신소설이나, 계몽소설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내 눈이 가는 곳은 말 그대로 ‘사람인’ 씨리우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조롱하는 ‘의미’를 붙잡고 있는 그를 말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이 탄식은 허징후에게서도, 쑨위에에게서도 나온 것이 아니다. 바로 씨리우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씨리우는 어떤 인물인가. 당위원장 서기라는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역사는 지금까지도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불초자식을 들이밀 줄이야. 참으로 진저리가 난다!(p.96)”라고 푸념하는 자이다. 또는 다시 한 번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기에, 그렇게 결혼 생활을 계속한다. 사실 그가 바라는 앞으로의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마 그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마디일 것이다. “아, 쫌!” 귀여워하던 아들놈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을 조롱하고, 재혼한 젊은 아내는 늘 우는 소리다. 씨리우는 여전히 마르크스를, 마오 주석을 이야기하지만, 역사는 이제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 사람, 씨리우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젊은이들은 그가 역사에 뒤쳐진 늙은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과거 행했던 잘못에 대해 역사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씨리우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상부로부터 내려온 방침일 뿐 “질 수 없는 책임”이다. 어찌되었건 그가 의미를 갖는 것은 ‘자신의 논리’이다. 만약 지금껏 자신이 가져왔던 논리를 버린다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사람아, 하고 탄식하면서 계속 싸워가는 것이다. 아무리 의미는 제각각이라지만, 내가 의미 붙여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막상 손을 펴보았을 때 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에, 나는 꼭 쥔 손을 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라한 씨리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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