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낯익은 세상 』, 문학동네, 2011
푸른 불빛들의 거리에서, “아, 다행이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있는 거냐?(「낯익은 세상」p.234)”
왕가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감을 느낀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멍한 머릿속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본다. 2011년 7월 부산. 아마 새벽일 것이다.
장대비가 내렸다. 그 장대비보다 더한 물대포가 뿌려진다. 물대포를 맞은 부위가 뜨끈뜨끈하더니 점점 아파온다. 생각이 마비된 채 사람들을 따라 달린다. 얼핏 돌아보니 전경들이 쫓아오고 있다. 사람들이 빽빽한 화장실로 들어가 따가운 최루액을 씻다가 문득 거울을 본다. 온몸이 파란 색소로 뒤범벅이 된 채 멍하니 있는, 위태로운 파란 불빛 같던 하나의 형체. 화장실에서 나와 아픈 눈을 연신 비비며 본 부산의 새벽 거리는 수많은 파란 불빛들이 비척비척 걸어가는, 낯설지만 낯익은 풍경이었다. 나는 왜. 새벽, 물대포가 날아들고 전경들이 곤봉을 휘두르는 그 순간에 이 소설을 떠올렸던가.
“아, 다행이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딱부리는 이제 알고 있었다. 수많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가까지의 집과 건물과 자동차들과 강변도로와 철교와 조명 불빛과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과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먼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낯익은 세상」p.228)”
아, 다행...일까. 처음 침대에 느긋이 누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마치 내가 이 말의 주인이라도 된 것 마냥. 부산에 다녀와서 나는 다시 책장을 펼치고 하나하나 구절들을 다시 읽고 또 읽는다. 아직 파란물이 빠지지 않은 손가락으로 연신 책장에 밑줄을 쳐본다.
수레바퀴의 한 회전. 백년 뒤에는 현재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난지도에 다시 꽃이 피듯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할 것이다. 덧없고, 쓸쓸한 것이다.
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나는 자격이 없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허겁지겁 쓰레기를 버리는 내가, 쓰레기 악취에 코를 찡그리는 내가 말이다. ‘꽃섬’의 철저한 외부인이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쓰레기 매립지라든가, 자본주의의 욕망이라든지. 잊혀져가고 있는 푸른 불꽃들, 도깨비들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을까. 그곳에서도 결국 다시 꽃은 필 것이라고. 물대포를 흠씬 맞으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꽃섬을 떠올렸다. 온갖 주인 잃은 욕망들이 다시 한 번 버려진 곳.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하는 거대한 쓰레기장. 이곳에서는 쓸모가 남은 쓰레기들이 또 다른 욕망들에 의해 분류되어 되팔아진다. 쓰레기에 값이 매겨지고, 이 돈뭉치를 따라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 들어 밤이면 소주와 잡탕 냄새가 진동한다. 쓰레기가 그 매개라는 점만 빼면 내 주위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에게는 꽃섬이 고무장갑으로 간신히 집어올린 쓰레기의 감촉처럼 어정쩡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나는 더 쉽게 이 세계를 동정하고, 희망의 말을 건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꽃섬은 텍스트 안에서만 박제된 세계가 아니었다. 단지 여러 모습을 띈 채로, 다양한 시공간의 좌표 속에서 있어 쉽게 깨닫지 못할 뿐이다. 꽃섬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쓰레기 매립장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본의 욕망을 지탱하는 그 모든 곳으로 확장된다. 나는 불타는 꽃섬만큼이나 낯익은 세상을 마주했다. 자본의 욕망이 만들어낸 또 다른 공간, 푸른 불빛들이 그렇게 차츰차츰 뒤로 흘러갔던 부산 거리에서 말이다. 내 눈 앞에서 또 다른 꽃섬을 마주한 이후, 그렇게 나는 조금 더 편안하게 딱부리의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볼 수 있었다.
새벽이 다시 밝아 오고, 당연한 듯 허기가 찾아온다. 배추김치 한 조각과 일회용 그릇에 담긴 뜨끈한 육개장을 황급히 넘기며, 조용히 곱씹는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있는 거냐?” 그리고, 다행이라고. 또 이렇게 아침이 밝았다고.
2011년 7월, 부산의 한 거리에서 나는 쭈그리고 앉아 이렇게 중얼거렸다.
[푸른 불빛] http://photo.naver.com/view/200508092156578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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