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희사2013. 10. 30. 22:28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에요~. 희사입니다^^

지난 번에 글 썼던 게 봄인데 벌써 가을이네요.. 시간이 가는 게 정말 빠릅니다..

 

전 지난 9월에 대학원 입시를 끝내서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입시를 마치고 나서는 아르바하고 활동하고 친구 만나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년동안 자도 깨도 공부였으니 그런지 이젠 책은 보기 싫습니다ㅎ

시험이 끊나면 이런저런 책 읽자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 쪽으로 마음이 가지 않네요.

그래서 이젠 책쪽은 포기하고 지금 제가 빠지고 있는 게 바로

 

드라마입니다.

 

사실 전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드라마를 그지 보지 않았고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갔다오고나서는 제 눈이 그 쪽으로 열렸지요 ㅎㅎㅎ

그리고 드라마가 어쩜 그렇게 인간에 대해 여러가지 알려주는지요.

예전에 이런걸 모르고 살았던 내가 안타깝습니다

이번엔 제가 한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본 드라마들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여러분의 감상도 들어보고 싶고, 제가 본 드라마야 여러분은 다 봤을 것 같지만 볼만한 드라마가 있으면 서로 알려 줄 수 있으면 좋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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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처음 본 드라마는 

공효진과 이선균이 출연한 파스타 입니다.

 

 



이건 보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방송 당시 전 수유너머에 가기 전에 같이 살던 친구와 같이 가끔 보곤 했었어요.

발란하고 귀여원 느낌이 좋아서 일본에 돌아오고 나서 봤습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둘이 참 귀엽게 생긴 게 마음에 들었어요.

, 얼굴이 귀엽다는 뜻이 아니라(귀엽긴 하지만ㅎ) 하는 행동이나 말투, 생각들이 귀여웠습니다.

무툭툭하면서도 프로의식이 강하고 다정한 최현욱(이선균)과 소박하고 열심히 셰프를 따라다니는 서유경(공효진)이 잘 어울렀죠.

근데 마지막에 하나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성유경의 유학에 대한 결심 말입니다.

전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서유경에게 단순히 감동했어요

나랑 많이 다르구나..하는 느낌도 들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여자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건... 뭐 어떤 드라마를 봐도 그럼 느낌은 받지만요지금 나에게 있어 드라마의 힘이라는 건 내가 할 수 없거나 살 수 없는 삶을 보여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같아요.

그런데 성유경은 좀 많이 참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여자는 많이 희생하는데 남자는 안 그래 보이는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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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겨우 하나만 썼는데 이번엔 이만 해야겠어요..ㅎㅎ

 또 생각날 때 다음 드라마 얘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도 좋은 날들을 보내시길. 또 만나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희사2013. 4. 13. 23:43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에요. 일본 교토에서 사는 희사입니다.

요즘 종종 블로그에 들어와 글 읽고 있었어요. 이음이 귀엽습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참 오래 안 본 것 같기도 하고 글쎄 그렇게 많이 변한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쪽에선 벚꽃이 피웠어요? 교토에선 올해 벚꽃이 빨리 피고 이미 쳐 버렸습니다.

 


(카모가와-집 근처에 흐르는 강- 에서. 꽃이 한창 피웠을 때...)


올해 봄에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활통도 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갑자기 감기에 걸렸어요.

일이니 공부니.. 아무것도 않아고 그냥 자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났어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약을 주러 오셨어요. 밤에 친구랑 놀려고 했지만 취소하고 집에 있겠다고 하면서 일하러 나가셨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후에 한국에서 돌아오고나서 이제까지 오랜만에 같이 살던 기억들이 났어요.

교토에 돌아오고 나서 저는 어머니랑 참 많이 싸웠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같은ㅎ 나는, 효도는 커녕 일상에서 생기는 그리고 자금까지 쌓여있었던 안 플린 마음들을 잘 다룰 수가 없어 자꾸 화도 냈고 가끔은 눈물도 냈고.... 그랬어요. 
요즘 공자를 읽는데 공자가 그렇게 효도하라는 말을 자꾸하는 것도 그게 어려워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하고요ㅎㅎ


작년에 교토에 이사왔을 때도 벚꽃이 피고 있었는데
올해 봄이 오면서 됐다!는 말, 하나 생각이 났어요.

관계의 압그래이드가 됐나?ㅎ 아무튼 지난 일년을 통해 서로 지금까지 못했던 얘기도 많이 했고 감정도 많이 냈고 그러면서 이젠 지금 느끼는 건 있으나 더 억지로 꺼내야될 옛날의 이야기도 없겠다.. 있어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마음이 드는게 사람들에 피해 난 늦는 걸까..ㅎㅎ?

아무튼 우리는 같이 시간을 지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시기가 오지 않으면 서로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 어머니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투고 부딪히는 건 무서운데 전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고요.

그건 요즘 같이 활통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느껴요.

다투고 나선 (내가 화를 낼 때가 많지만;;) 그런 사소한 일로 화를 낸 내가 어리석고 후회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관계는 깊어지는구나...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그렇게 같이 시간을 지내다가 중요해지는 것 알았어요.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잘 되기만 원하는 나로서는 역시 사람도 관계도 넘어지면서 깊어지는구나 라는 것, 느끼기에 참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참, 지현이가 버킷리스트 하자고 그랬지!

음, 생각해 봤는데 지금 내고 싶은 건 두개.

하나는 스웨덴에서 말타기.

난 옛날에 린드그렌이라는 스웨덴의 동화작가의 책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여름의 스웨덴에 동경이 있어요. 가서 자연속에서ㅎㅎㅎ 말을 타 보고 싶습니다, 길게. 

그리고! 오랑우탄을 만나고 싶습니다. 오랑우탄의 애기가 참 귀여워서요. 보루네오에 가고 싶어요. 

이상...


여러분의 편한한 잠을 비면서 갑작스레 올린 글을 마치겠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희사2011. 7. 26. 19:12

2011. 07. 23 / 2ne / 이것이 인간인가                                                                                 

발제자 : 희사

 

파시즘에 대한 작은 생각들

 




 그들의 영혼은 죽어 있다. 음악은 바람이 낙엽을 날리듯 그들을 떠밀며 그들에게서 의지를 몰아낸다. 의지 같은 것은 이제 없다. 북소리의 박자가 걸음이 되고, 반사작용으로 지친 근육을 잡아당긴다. 독일인들은 점에서 성공했다. 1 명의 동료들은 하나의 회색 기계들이다. 그들은 정확할 정도로 결연하다.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p74

 


l        
생각1. 파시즘을 낳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도 파시즘에 대한 생각은 했었다. 파시즘은 발생하는가? 일본에서 다시 파시즘이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문득 생각하곤 했다. 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파시즘이 발생하는 데에는 우파들의 선동이 많이 관련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몸짓으로 선동하는 히틀러와 그것에 열광하는 민중들의 모습. 무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나의 파시즘에 대한 이미지다. 그래서일까, 나는 파시즘에는 민중들의 자발성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안에 있는 파시즘을 경계하고 안에 있는 파시즘을 경계하라. 파시즘에 대해 갖고 있는 나의 기본적인 생각의 틀은 이런 식이다. 틀은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조금 답답하다. 나를 경계하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남에게 어떻게 너를 경계하라!’라고 말할 있단 말인가? 파시즘에 대해 좀더 다르게 생각할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인간인가> 마지막 불록에서 어떤 학생이 레비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책에는 독일 사람들에 대한 증오나 원한이나 복수심을 찾아볼 없다. 그들이 밉지 않는가? 그것에 대해 레비는 유령집단을 향해 내가 어떻게 분노를 키우고 복수를 바랄 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이러한 레비의 생각은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 레비가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은 분명히 인간이다. 지난 세미나 시간에서도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많은 공감이 나왔다. 만약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것인가? 무엇을 있는가? 세미나에서는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은 당연히 무력해진다는 , 무력해지면서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게 것이라고 얘기를 나누었다. 살아남으려는 힘은 엄청난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애초 살아갈 없다.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살아남으려고 하는 욕망과 다른 욕망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든지 누군가에게 양보하려는 마음, 혹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 그런 욕망은 사람이라는 동물의 본성에는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존엄성이라든지 인간성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가 나의 욕망이 아닌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많은 경우 자신을 알고 싶어하고 자신을 이어나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존엄성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 나가고 싶다고 종종 생각하는데, 그것 또한 나의 욕망이다. 먹고 살기만이 욕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욕구는 다른 말로는 자신을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이런 욕망은 옛날부터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 얘기되어왔고, 인간의 문화의 일부로서 존재해 왔다. 그리고 레비가 있었던 수용소는 바로 그런 인간성이 파괴되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울타리인 카베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이 아주 연약한 것이며 인간성이야말로 우리 생명보다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설과 구타로부터 일시적으로 멀어진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 속으로 다시 들어가 생각할 있었다우리는 노예가 되오, 이름 없는 죽음을 맞기 훨씬 전에 먼저 영혼이 죽어, 수백 행진하고 말없이 중노동을 했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아무도 여기서 나가선 된다. 팔뚝에 새겨진 숫자를 들이대며, 아우슈비츠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들수 있다는 불길한 소식을 세상에 전해서는 된다.p81

 

 

 l         생각2. 인간성과 와리키리

 요즘에 들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일하는 이다. 일을 나는 어떻게 되는가? 돈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 어떤 목표를 향해 돌진할 , 나는 종종 자기의 마음을 하나하나 잘라 버린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문탁에서 일본어를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슬픈 감정이 있었다. 그렇지만 수업은 해야 하고 나의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 가르쳐 주고 있는 아줌마들에게 틀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평소보다 밝은 하면서 수업을 했다. 일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체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처럼. 실은 하기 싫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밝은 미소를 열심히 지우며 수업을 했다.

일본어에는 이런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와리키리)’라는 단어가 있다. ‘와리키리 어떤 원칙에 따라 단순·명쾌하게 결론을 낸다(from naver)”는 뜻이다. 어떤 행위를 해야 , 그것에 대한 감정이라든지 자신의 마음을 일단 옆에 두고 일시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또한 와리키리다. 일을 빨리 잘하려고 우리는 자주 와리키리 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러한 와리키리를 잘하는 사람을 어른스럽다, 어른이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와리키리가 일을 하는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와리키리와 나는 오래 지낸 사이다. 나는 최근까지는 그것을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고, 와리키리를 함으로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나의 마음 상태는 자꾸 변한다. 또한 정체성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연속성과 정체성은 나에게 그름보다도 잡기 힘든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하게 나오는 결과가 중요하지 않는가.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자꾸 와리키리를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와리키리를 내가 하나하나의 부분으로 나눠지는 느낌도 또한 피할 수가 없었다.

 레비가 말하는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 레비가 유령이라고 말했던 SS 가베 직원들도 일을 하기 위해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들은 정말로 와리키리를 잘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존엄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베는 그들을 유령이라 부른 것이 아닐까?


 

                            (이제 조용한 아우슈비츠 근처의 숲)   

 

 l         생각3. 다시 파시즘을 낳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먹을 거리나 마실 거리, 깨끗한 환경이나 휴식등은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다. 수용소에서는 그런 것들은 모두 박탈되었다.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몰려갔던 상황을 레비는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렇지만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명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는 개개인이 정말로 고독하다”.살아남기 위해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포기해야만 했던 상황에서는 인간은 이상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타자에 대해서도 생각할 없다. 레비가 수용소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람의 인간성은 얼마나 파괴되기 쉽고 약한가.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인간성을 믿고 살아가는 가는 생물인데도 말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인간성이 파괴되면 이상 자신도 타인도 믿을 없게 같다. 레비도 자기 집에서는 수용소에서 행해진 것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일을 하는 것을 무섭게 느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일을 나는 나라는 명의 개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위해서 능력과 에너지를 자르고 판다. 수용소와는 정말 다르지만 현재의 삶에서도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면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결국 레비의 기록을 읽고 있으면 파시즘이란 개인이 스스로의 인간성이나 정체성을 포기했을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에 파시즘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의 견해가 나온다. 파시즘은 개인의 능동적인 행위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기보다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이나 인간성을 포기했을 때야 성립 가능하고 유지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열광하는 민중들의 모습에서는 능동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포기가 느껴진다. 푸코가 자기 내부에 있는 권력을 알아차리고 자기를 배려하는 기술을 알려준 것도 이런 맥락과 닿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나에게 남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자기 스스로를 지켜나갈 있는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당당하게 있는가라는 문제다.

 

 

 l         마치며 - 관계속의 나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떨 나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돌이켜 보면 나는 혼자서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같이 있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친구들의 여러 면을 보고 느낀다. 내가 친구한테 주목하는 것은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사람의 인간성이다. 아마도 그들도 나의 그런 면을 보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나는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과 같이 있으려고 내가 하게 되는 고민은 새로운 삶을 생각하게 주는 것이기도 한다. 그래서 안의 파시즘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나의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누구보다도 자신의 인간성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나와는 이질적인 타자다.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려고 하는 . 이런 과정이 파시즘을 대신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은 천천히...)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희사2011. 6. 25. 15:04


   (열정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고 있으면 머리가 도는 느낌이 든다. 극히 흥분된 정서와 과장된 몸짓, 파괴에 대한 욕망들이 책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읽고 나가면 점점 그 세계에 빠져들고 나의 마음도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이른바 이성적인 사람 나오지 않는다. 가장 양심적인 사람인 아류샤마저도 가끔 사로잡혀 있는 느낌이 든다. 그는 신과 신의 사랑을 믿지만 그것도 스스로가 통제할 없는 힘으로 느끼고 있는 같다. 적어도 그는 이성적으로 선택해서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 그것은 스스로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없는 삶의 아닐까. 삶의 힘은 나를 움직이고 있는 욕망의 힘이다.

그런데 동시에 그들은 아주 불안해 보인다. 돈을 열심히 모으는 뾰도르, 구루셴카를 빼앗길까봐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미짜. 또한 신에 대한 불신에 괴로워하고 있는 어느 여성의 고백이나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에류샤에게 하는 이반의 한탐도 인간의 이성으로는 통제할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삶의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동시에 활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그러한 삶의 힘이 까라마조프의 표현된다.

 

                                              (3형제의 얘기는 세상에 참 많다) 


 
그렇다, 그들은 뜨겁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또한 피곤함 느끼는 것은 왜인가? 과장된 말과 몸짓, 히스테리의 폭풍. 이야기를 읽어가면 사람들이 스스로의 통제할 없는 욕망 휩쓸리면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욕망은 뜨겁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욕망에 대한 무력감도 느껴지는 것이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나오는 정서는 절대로 부정할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힘을 평소 숨기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힘과 좀더 지낼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의 욕망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서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지낼 있을테니 말이다.  욕망과 이성 사이의 줄타기. 그것은 나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과제다.













                                                                                                             (러시아에...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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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희사2011. 5. 8. 22:23

                                                     (입장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라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에 관여할지 안 할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는 역사 - 주로 그의 대의에 말려들어간 삶들이 묘사된다.
 자기가 그 자리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그것은 역사의 흐름과 같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역사의 한 측명, 한 대의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파를 둘러싼 시대의 흐름은 끊임 없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요구한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의견이 입장에 꽉 얽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각자가 자신의 입장을 떠나서는 마음은 털어놓을 수 없다는 느낌.. 
'입장'을 넘어선 만남, 역사 앞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인가?
 대학교에서 정당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정치와 시대, 역사는 개인에게 어쩔 수 없이 '입장'을 갖도록 요구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면서 살아가는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입장.  나는 일본에서 살았을 때 그것을 계속해서 간직해 왔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지금까지의 그 입장을 다시 되묻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나의 입장에 나의 모든 문제를 싣고 있었구나! 
 깨지고 또 깨지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나에게 좀더 나의 마음에 정직하게 살도록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혁명에 대한 얘기와 연애에 대한 마음이 얽히면서 
 자기들의 정직한 마음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에서는
 이 1년동안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자기에게 계속해서 '보류'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손유에의 선명한 생각에 자극을 받았다. 
 이제 다시 나의 입자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깨는 것 뿐만 아니라
 나의 입장을 만들어나가는 작업. 그리고 그 입장을 '살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 앞에서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입장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서로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