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잔잔2013. 11. 13. 16:39

 

선은이가 지현이 전주못온다는 글 백지에 남겼다는 얘기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저는 굴파고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2월에 이음이 동생 여울이가 나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쪽파랑 알타리랑 무다듬어서 총각김치 담았어요. 생각이 많아지고 굴을 파고 들어갈거 같은 느낌이 올때 단순하고 좋은 향이 나는 작업을 하며 시간 보내는 걸 추천해봅니다. ^^

아마 두달정도 뒤에 푹 익은 총각김치를 먹으며, 아 이걸 담던 때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더라지, 하고 냠냠쩝쩝하겠죠. 흠 아무튼.

 

어제 우연히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시 봤어요.

제가 엄청 좋아했던 영화에요. 보고나서 마지막 대사를 외워뒀는데 아직도 툭치면 그 대사를 읊을수 있답니다.

뭐랄까. 짝사랑만 주구장창하며 지내던 그런 날들을 보내던 중에 '사랑' 그것도 '영원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같은 걸 가지며 가슴에 깊이 묻어두었더라죠.

줄거리를 다 알거라 여기고 대충 얘기하자면 첫눈에 반한 두남녀의 사랑이야기에요. 순수하고 풋풋한 느낌이 막 나죠. 조소과 여학생과 국문과 남학생의 러브스토리. 그러다 남학생이 군대를 가던 날 여학생이 마중나오다 트럭에 치여 죽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남학생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애낳고 살고 국어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에 한 남학생이 지나간 첫사랑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말과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이 환생한 그녀라고 믿고 사랑합니다. 당연히 학교에 소문이 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리게 했던 그 남학생도 자신의 전생을 자각하고 선생님을 찾아 함께 떠납니다. 뉴질랜드에 번지점프를 하러말입니다. 줄없이요. 영화부제가 bungee jumping of their own 이에요. 그들 자신속으로 번지점프를 하다, 인가요.

 

영화줄거리는 이만 할게요. 아마 예전에 처음 봤을 때 줄거리를 썼다면 더 아름답게 썼을 거에요. 대사도 막 인용해가면서 말이죠. 사실 아름다운 영화에요! ^^

그런데 늙어가며 삐딱해져서 그런가. 영화결말이 엄청 거슬리더라구요. 어제밤내내 생각나고 결국 오늘 아침엔 한마디라도 적어둬야겠다 싶을 정도로요. 웃기죠.

뭐가 거슬렸냐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인생을, 삶을 너무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인생에게 무례하다고 해야할까요. 몇번을 태어나고 죽어도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는 그럴 수도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사람과만 행복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건 이해가 안되고 화가 나네요. 주인공 남자가 교사가 되서 만난 반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연으로 우리가 이 교실에 앉아 서로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엄청난 인연을 무시하고 죽음으로 끝내는 건 뭔가요, 싶은 겁니다. (물론 그 절벽아래로 뛰어내려도 끝이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지만 그 이후에 환생한 삶은 별개의 또 다른 삶인거죠)

사회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동성애라는 이름으로 핍박받으니 죽어서 다시 환생해서 만나자.

결말이 이렇게 읽혔어요. 너무 삐딱한가. 흠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결말은 뭘까요.

 

주어진 생애 내에서 다시 만난 자신의 사랑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나머지를 살아가는 겁니다.

 

물론 아마 그런 결말이었다면 영화주제가 틀어질수도 있겠죠. 근데 저는 동성애에 집중하고픈 게 아니라

그냥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글을 마구 휘갈기며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왜 이 결말에 흥분했는가.

 

아마 나는 열심히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아름답게 손을 꼭잡고 번지점프를 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에 질투가 났나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매일 이음이와 꼭 붙어 비슷비슷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물론 아주 꼼꼼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매일 순간순간이 다르지만..........................그런 게 보이는 날들은 손에 꼽고요.

다들 어찌 지내나요?

지현이는 저번에 얼굴 봤는데 취업준비로 그리고 맏딸로 서느라 애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살도 많이 빠져보였고요.

다른 친구들은 곰쌤 결혼식때 보겠죠. 그럼 그때 봅시다.

글 쓰면서 급흥분했다 혼자 가라앉히고 내려갑니다. 안녕.

 

Posted by  잔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