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여름_2011. 5. 22. 23:58

 

신념을 지키는 사람

―비록 보잘 것 없는 들풀밖에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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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반우파투쟁…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 관통하고 있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의 1950년대~1980년대 중국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런 체제 하에서 혁명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것, 개개인의 삶보다 좌파이냐 우파이냐 라는 노선의 문제가 앞서버리는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개인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고. 나는 두 주인공 손 유에와 호 젠후,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관계에 나와 어떤 조직의 모습을 투영하였다. 그들은 왜 대학생 시절로부터 20여년 지나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는가. 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했는가. 그들에게서 조직에 의해 억압된 개인의 모습을 자꾸만 찾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고치려고 책을 다시 보다가 깨달았다. 손 유에와 호 젠후가 20여년 동안이나 서로 사랑하면서도 결합하지 못한 것은, 조직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애초에 (호 젠후는 모르겠지만) 손 유에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했던 적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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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유에. 올해 나이 마흔. C시 대학 총지부 서기. 그리고 중학생 된 딸아이의 엄마.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나 별거 생활을 하던 남편 자오 젠호안은 그녀가 보시파로 공격을 받는 와중에 이혼을 요구하고 새 가정을 꾸렸다. 이 이혼과 맞물려 그가 존경하고 따르던 지도자 시 류의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이 발각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목에 걸린 ‘시 류의 첩’이라는 표 따위는 무섭지 않았다. 언젠가 틀림없이 은총의 비가 내려서, 내가 뒤집어쓴 더러운 물을 씻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부터 완전히 자신을 잃고 말았다. 더러운 물에 기름이 섞여 있었으리라고야!”(31쪽)

 

그녀가 믿었던 것들이 이렇게 하나 둘 씩 무너져갔던 것이다. 가정도, 당도 모두. 그녀는 자신의 믿음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딸의 이름을 호안호안에서 유감이라는 뜻을 가진 한한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녀는 여전히 당원이지만 그때의 열정은 이미 없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 생기를 잃었고, 딸을 키워야한다는 의무감만이 그녀를 살아가게 하고 있다.

 

그때 그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호 젠후. 그는 그녀의 대학 동기이자, 그녀를 몹시도 사모했었던 이다. 대학 시절, 손 유에 역시 호 젠후에게 몹시 끌렸지만 그녀는 남자친구였던 자오 젠호안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 호 젠후는 반우파로 몰려 제적 처분을 당했고 그들은 더욱 결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그들은 재회한다. 호 젠후가 복권되어 C시의 대학으로 돌아오자, 손 유에는 대학 총지부 서기이자 간부로서 그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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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 주인공과 그들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써보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 그럴듯한 드라마나 영화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카피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랑’ 정도가 좋겠고.

여기서 잠깐, 문제가 있다. 우리의 여주인공이 그렇게 사랑을 덥석 무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손 유에는 원칙주의자다. 그런 점에서는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여전히 그녀는 결벽증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아직 재혼을 안 한 것만 해도 그렇다. 사실 10여년이 넘는 공백이 있으므로 남자를 만나려면 호 젠후 전에도 얼마든지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손 유에는 서로 적당히 맞춰 갈 상대, 생활의 필요에 따른 남편은 됐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아줌마, 나이 마흔 맞나 싶다. 설마, 아직도 운명의 상대 타령하는 거??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애초에 호 젠후에게 끌렸음에도 자오 젠호안과 결혼한 것 역시 소꿉친구이자 연인을 배신할 수 없다는 것, 당 조직에 반하는 반우파 인사와 결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랑보다는 믿음, 책임을 더 중시하는 사람인 것이다. 조직에 대한 태도에서도 이런 기질은 드러난다. 소설 말미에 손 유에는 호 젠후의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 출판 문제로 당 위원회와 갈등을 겪는데, 그것은 당 위원회에 대한 부정도 타도도 아닌 스스로가 당 위원회의 일원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반응이다. 당위원회의 결정이 권력남용으로 흐르고 있다, 당의 방침과 정책을 이런 식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한 발언인 것. 남녀 간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서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문하고 난 후에야 그녀는 반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손 유에가 당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거나, 정치적 활동 때문에 호 젠후와 결합을 하지 못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정치적, 사회적 입장 때문에 호 젠후와 결합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에 따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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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 보다는 내면의 기준에 맞춰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한 후에 결정을 하는 타입의 사람이다 보니, “실제 주위에 이런 사람 있으면 엄청 피곤할 것 같다”, “짜증난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소설임에도 한결같이 손 유에에 대해서 감탄하거나 외경의 심리를 갖는 것으로 그려지는, 과한 여주인공 취급은 충분히 짜증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녀의 속앓이와 원한에 대해 ‘답답하고 짜증나고 유치하다’고 쉽게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손 유에는 분명 융통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나간 과거를 놓지 못한다. 현실에 적응하고 새 가정을 꾸리라는 주위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동시에 그녀의 대단한 점이다. 그녀는 현실이 힘들고 고달플지언정, 신념을 놓지 않았다. 그 믿음에 스스로가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타협하지 않았다. 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도 잘 몰랐지만, 어쨌든 그녀는 계속 걸었다. 물론 그것은 손 유에 자신을 자꾸만 회의에 빠지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나는 어떤 것에 갑자기 정신적인 지주, 대들보를 뽑혀 버리고 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쟈 호유(홍루몽의 주인공)가 부적인 통령 보옥을 잃어 버렸을 때처럼 마음의 기둥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 불안과 초조 속에서 여기 저기 찾아 헤맸어. 그러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거나 뭔가 눈에 띄어도 영력이 없는 단순한 돌멩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224쪽)

 

그녀가 찾고자 한 ‘통령보옥’은 뭘까. 나는 그녀의 믿음을 어떤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그럼으로써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 거대한 약속 자체에 대한,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한다. 현실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안주하고, 그래서 ‘세상은 다 그렇다, 안 바뀐다’고 말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과는 분명 다른 방식이다.

 

물론 손 유에가 답답해 죽겠다는 반응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녀의 방식은 요즘 쳐주는 ‘솔직함’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슈 홍종이 마음에 들지도 않으면서 그 아들 신발은 왜 만들어주고 있으며, 정말 사랑하면서 호 젠후에게 왜 사랑한단 말도 못하는지. 좀체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다가 이어질 듯 말 듯 한 상황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하고 결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아. 사랑하고 있어.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꿈속에서 얼마나 당신을 불렀던가. 머릿속에서 당신과 같이 생활하는 장면을 얼마나 그려 보았던가. 하지만 그럴 때면 꼭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올라. 사람들의 오해와 조소 속에 내가 과거의 심판을 받고 있는 장면이…….”(295쪽)

 

그래서 자신 앞에는 “독신의 길밖에 없노라”고, “만일 내세가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손 유에를 보고 있자면, 더는 가식이라고 욕할 수가 없다. 그녀는 속으로는 생활을 중시하면서 겉으로만 고고한 체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정신의 길만을 취해버린 것이다. 아 가엾은 사람, 바보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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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는 고통까지 갖다 준다(223)”했던가. 손 유에는 청춘의 많은 시절을 아픈 역사가 드리운 그늘 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결국 이 작품에서 승리자는 그녀라고 생각된다. 제대로 아물지 못한 전 남편과의 상처는 20여 년 만에 그와 대면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처음에 그녀는 자오 젠호안을 용서할 수 없었다. 딸 한한이 그를 만나는 것도 속으로 바라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당시 자신이 자오 젠호안과 맺었던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는 맹목적인 이상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걸,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단지 누군가가 버렸고 버림받았다는 얘기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세월과 그로 인해 회의로 가득 찼던 날들은 이제 손 유에에게 새로운 의미가 된다.

‘난 불행을 겪었지만 그것이 지금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말이나 ‘잃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같은 말은 의외로 하기 쉽지만 순간 마음을 위로하는 말에 그치기도 쉽다. 그녀가 스스로 “이것은 아큐 류의 자기기만도 아니고 타인에 대한 자기기만도 아니다(351쪽)”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 말이 순간이 아닌 충분히 오랜 세월 아파한 뒤 얻은 것이기 때문 아닐까. 결국 손 유에와 호 젠후가 결합함을 암시하는 결말 역시 그렇게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호 젠후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첫사랑이나 남녀의 기쁨을 넘어선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을 거듭 거듭 반성해서 정련시킨 결정(352쪽)”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은 굉장히 이상주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권력을 잡았고, 다른 가정을 꾸렸고, 생활을 택한 그 모든 현실순응주의자들은 다들 지금의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한탄하게 되었지만 20년 동안 한결같았던 손 유에와 호 젠후는 결국 행복졌답니다’, 뭐 이런 거니까. 혹은 ‘이상을 버리지 않은 그대여, 고통스러워도 살아 나가라. 그러면 언젠가 그 고통이 확고한 신념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런 거라고 할 수도 있을 테고. 끈질긴 이상주의자의 승리라고나!


현실과 이상에 대한 고민은 이 세상 살아가는 인간들 모두가 하는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손 유에일 수는 없으며 사람마다 그 사이에서 각기 다른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 손 유에는 이상을 택했다. 그것은 늘 달콤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녀는 자기가 택한 전략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 결과 불같은 사랑도, 청춘도 잃었지만 그 정열이 불 탄 자리에서 그녀는 나아갈 길을 위한 숯불을 얻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Posted by 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