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만화영화를 보며 악당을 응원해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종종 어렸을 적 만화영화를 보며 마음속으로 악당을 응원했다. 만화영화 속 답답하게 바르고 착하기만 한 주인공이 악당에 의해 죽으면서 만화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악당을 응원한 적이 많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단 한 번도 이루어 지지 않았던 것 같다.(주인공은 죽더라도 다시 꼭 환생의 기회를 얻어 살아났다) 그리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며 주인공을 좋아하기 위해 애썼다.
리이닝은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정이 갔던 인물이었다. 격변하는 중국 역사 속에서 크게 상처 입은 여인이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사람의 배신 등, 그녀에겐 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길 만큼 그녀의 삶은 중국의 역사속에서 매우 힘들었다. 그러한 시련들을 거치고 그녀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함께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게 아껴주고 도와주는 남편이 있다. 이상을 쫒는 것 아닌 현실에서의 생활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 정치적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아직도 그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쑨위에에게 자신처럼 살아가라고, 그래야 편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리이닝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힘든데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거나 고통받아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안고가는 것은 대단하긴 하지만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대부분의 소설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러한 시련이 있어도 이겨내고 극복하여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반해 굉장히 현실적이고 현명해 보였다.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한편으론 '저러면 안되는데, 끝까지 싸워야 하는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지 않는 그녀가 좋았고 그녀를 응원했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으로 가자 그녀는 나의 응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리쳐 말했다.
"''''''오랫동안 심하게 당했었지만 조국으로부터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어. 나는 쭉 조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다 보니 내 의지는 움츠러들고 말았지. 나는 나태에 빠져서 현상에 안주하고 파란과 고통을 두려워하게 되었어. 지금은 과거와는 달라서 정말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이미 뛰어오를 수가 없어. 지금 필요한 것은 끈기 있고, 방심하지 않으며, 평범하면서도 괴로운 투쟁과 공작이지. 드높은 정신과 지칠 줄 모르는 정열, 그리고 강인한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혼자서 망상하는 일은 있지.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이라도 분발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생략)"
참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녀의 슬픔과 아픔이 전해지며 그녀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왜 항상 나를 둘러싼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는 당의성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스스로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마음 아파해야 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리이닝이 끝까지 자신에게 아픔을 준 조국을 잊고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가지게 하는 정열과 강인한 의지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사실 나는 조금 더 통쾌했을 것 같다. 자신의 국가의 발전적 신념을 위해 한평생을 고생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멋있고 존경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 한명쯤은 그런 삶에 당위성을 느끼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주는 행복감에 만족하며 사는 것을 보여줬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 무의식 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이상과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견뎌야한다, 열정적인 것이 좋은 것이다 등의 나의 사고와 이렇지 못한 나를 보며 들었던 스스로의 죄책감들이 조금은 깨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럼 언젠간 만화영화속 악당이 주인공에 의해 죽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바르고 강직한 주인공보다 차라리 악당이 좋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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