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이 “권리들”을 규정했던 것처럼, 개인의 “권리들”을 되찾는 것을 정치에 요구하지 마라. 개인은 권력의 산물이다.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과 전치, 다양한 조합들에 의한 “탈개인화de-individualize"여야 한다. 집단은 위계화된 개인들을 획일화하는 유기적 접착이 아니라 탈개인화의 부단한 발생장치이어야 한다.
*권력에 매혹당하지 마라.
[안티 오이디푸스 영역판 서문 by 푸코]
저번주와 이번주 마음세미나는 채운샘의 안티오이디푸스 강의가 있었어요.
기계니 코드니 영토화니 용어때문에 정신이 없긴 하지만 강의를 다 듣고난 지금,
이들의 저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합니다. 노마디즘 한 번 읽고 싶어요.
마음세미나 끝나고 세미나를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긴 합니다만.. 우선 사람들을 모아봐야 겠네요.
욕망이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사실, 즉 나의 욕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나의 욕망이라고 생각하고 내 욕망대로 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거죠.
그 욕망은 사회나 국가, 자본에 의해 권력화 된 것들이니까요.
이런 것들을 파시즘이라고 부르더라구요. 내 안의 파시즘.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바로 그 권력을 욕망하게 만드는 파시즘"을
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차이, 차이의 반복들을 중요시 여겼었나봐요.
요새 화요일에 영어 세미나를 하는데
거기에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고 있어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미국 민중사의 한 부분이 떠올랐어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백인 상류층에게 반대하여
흑인들, 이민자들, 가난한 백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들의 반란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내는 게 목표가 아니었어요.
자기네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지만 결국 기존의 엘리트 정당들에게 먹히고 맙니다.
"Liberty!"
이 자유라는 이름이 반란의 방식을 이런 식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든거죠.
하나의 흐름 밖에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다른 식의 흐름들을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씁쓸함이 요새 저의 고민입니다.
20대, 대학생, 그것도 졸업을 앞둔 대학생,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
이 위치에서 어떻게 씁쓸함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이런 고민을 던져준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서 답을 찾아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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