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정 철 현
혁명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선충원이 묘사하는 참혹한 광경은 그 당시의 중국을 잘 나타내준다.
상가는 몸통 없는 머리로 뒤덮여 있었고 긴 사다리의 가로대에도 많은 머리가 매달려 있었다. 사다리는 새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반란군들은 산에서 대나무를 잘라 사다리의 수직장대에 수평가로대를 고정시켰다. 나는 몹시 놀랐고 사람들이 왜 살해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왜 머리가 잘렸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잠시 뒤 나는 늘어놓은 귀를 발견했다. 그것은 보기 힘든 기묘한 광경이었다.…… 왜 그들은 머리를 잘렸을까? 나는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의 대답은 혁명이었다. 106p, 천안문
루쉰이 살던 중국은 격변의 장이었다. 열강의 침입과 서태후의 섭정으로 그동안 중국을 지배해온 청조는 쇠퇴하고 있었고,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문물은 중국의 전통을 와해시키고 있었다. 개혁과 혁명의 기운이 중국을 감싸고 있었다. 많은 지식인들은 청조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근대화하고자 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중국을 지배해 왔던 유교적 전통에서 벗어나 서구의 새로운 사상을 도입하고 시험하고자 하였다. 청조와 새로운 중국 사이의 과도기에서 중국은 수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고, 무수한 피를 흘려야만 했다. 선충원이 위와 같이 묘사하듯, 혁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어떤 자는 실제로 혁명을 꿈꾸고 실행에 옮기다 죽어갔고, 어떤 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역사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 버리고 거리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몇 사람의 목숨쯤은 중국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그들은 좋은 심성을 가진 방관자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거나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릴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곧 시위로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특히 맨주먹으로 나선 시위로는. 214p, 천안문
하지만 뜨거운 열망과 투지에 불타올랐던 시위가 끝나면, 남는 것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애잔한 슬픔만이다. 그것은 그 시위의 방법이 너무나 과격하고, 무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해서는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변화를 갈망하는 중국인들에게 매우 파급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쉽게 말을 하고 실행했다. 물론 그들의 이상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온당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언행으로 인해 희생될 동지들의 허망한 죽음을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기에 맨주먹으로 시위에 나서고, 허망한 죽음을 함께 맞이한다.
하지만 루쉰이 보기에 그들은 너무나 섣불리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대중들이 갈 길이라고는 온갖 위험에 처하는 일과 굶어죽는 일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대중을 깨웠다는 것이다.
가령 여기에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있다고 합시다. 그 새는 조롱 속에선 물론 부자유합니다. 하지만 일단 조롱 밖으로 나오면 거기엔 매라든가 고양이가 있고 그밖에도 온갖 것들이 노리고 있어서 조롱 속에 크느라고 날개의 힘도 없고 나는 것도 잊어버린 처지라면 도무지 살아갈 길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또 하나의 길이 있긴 합니다. 그것은 굶어죽는 일입니다. 그러나 굶어죽은 것은 생활과 동떨어진 일이므로 문제 삼을 것이 없습니다. 63p
조롱 속의 새가 과거의 인습 안에 갇혀 사는 중국인라면, 그 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물을 접한 대중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단지 그들에게 과거의 것이 잘못되었다고만 말한다면, 이러한 지식은 죄악이 될 뿐이다. 그들은 과거가 왜 잘못되었으며, 이를 고치려면 무엇을 해야 하며,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는 무얼할지에 대한 길을 제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 속에서 길을 잃어 고통만 받는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꿈에서 깨어났는데 가야 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만약 가야 할 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깨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64p
개혁적 정치인들이 대중들을 구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국가를 꿈꾸도록 하지만, 어떤 구체적 길 없이 단지 이상, 장래의 꿈만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대중들을 희생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루쉰은 이에 대해 현재의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장래의 꿈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단지 장래의 꿈을 위한 노력과 행동은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 루쉰은 아무런 방책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만들어 놓은 허구적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미래에 대한 꿈은 꿀 수 있다. 하지만 그 꿈은 현재를 제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는 중국민들에게 현재 이루어 내야만할 꿈인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 루쉰은 몸에 밴 관습을 버릴 것을 말하며, 지금 현재의 삶을 잘 꾸려나가라고 한다. 집 나온 노라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경제, 즉 생활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오랜 중국의 관습적 사고인 남성중심주의를 타파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남녀평등과 남녀균등분배가 가능하며, 이후 여성의 경제적인 자립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전투의 무용함을 강조하며 일상에서 개개인의 변화를 요구한다. 루쉰에게 이 문제는 중국민의 피를 모두 뽑아, 바꿔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중요했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가정을 지배했던 사고들을 떨쳐버리는 것에 대해 루쉰은 열변을 토한다. <나의 열절관>, <아버지로서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 <노라는 가출하여 어떻게 되었는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의 유교적 전통은 대중을 억압했다.
특히 <나의 열절론>에서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전통적 여성관, 남성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열절이라는 것은 여성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기형적 도덕이라며, 이러한 관념을 없어져야 할 것이라 말한다.
최초의 의문은 불열절의 여자는 국가의 해악이냐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가 파멸에 직면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원인은 모두 새로운 도덕과 새로운 학문을 등한히 한 데에 있다. 행동도 사상도 구태 의연하기 때문에 마치 고대의 난세를 연상케 하는 암흑상태가 현출된 것이다. …… 다음 의문은 왜 구세의 모든 책임이 여자에게 있는 가라는 것이다. …… 다음 의문은 그 표창에 어떤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근거 박약한 것이 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 열절이란 것은 못시 어려운 일이고 몹시 괴롭고 누구도 바라지 않으며 더구나 자타를 함께 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사회 국가에 이익이 되지도 않으며 인간의 장래를 위해서도 도무지 무의미한 행위라고. 그 존재의 활력과 가치는 오늘날 이미 상실되었다고. 16p
또한 자식에 대한 오래된 사고방식을 비판하면서, 루쉰은 먼 장래를 내다본다.
늙은 것은 길을 비켜주면서 젊은 것을 재촉하고 격려해서 가게 해야 한다. 도중에 구멍이 있으면 자기가 죽어 그것을 메우면서 그들을 가게 해야 한다. 젊은이는 자기를 가게 하기 위해 구멍을 메워 준 노인에게 감사해야 하며 노인도 역시 자기가 메워준 구멍 위를 지나서 앞으로 전진하는 젊은이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사정을 안다면 소년에서 장년으로, 노년으로, 죽음으로, 기쁘게 용감하게 나갈 수 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조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의 창출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생물계의 정도이다. 인류의 조상도 그 길을 걸어왔다. 24p
중국의 오래된 사고방식은 부부를 인륜의 시작이라고 놓는다. 루쉰은 이는 맞지 않으며, 부부는 인륜의 중간이라 말한다. 그는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은 또 자식을 낳는 생명의 기나긴 길을 걸쳐 역사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명의 길 속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은혜를 베푸는 존재가 아니다. 단지 이어받은 것을 이어준다는 점에서 중개자일 뿐이다. 그러니 어른이 아이보다 중요시 여겨져야 근거는 없다. 루쉰에게 있어 혁명이나 변화는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다. 조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형의 창출은 이런 과정 속에 있다. 그런데 중국의 구습은 연속적인 역사의 길을 자꾸 방해한다. 이러한 후퇴는 부모들이 자신들의 권리만을 강조하고, 아이들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뿌리깊은 구습으로 인해 아이들은 언제나 희생당하며, 사회의 진보를 위한 중개자로서 성장하지 못하기에 생겨난다. 루쉰은 이것이 자연계의 질서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진보를 막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억압하고, 희생시킨다면 남는 것은 과거뿐이며, 미래는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잘 낳아, 튼튼하게 기르고, 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렇듯 루쉰은 중국민에게 미래의 희망을 앞세우려 하지 않았고, 그들 뼈 속 깊이 자리잡은 오랜된 인습을 고치려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실행에 옮기라고 말한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라는 것, 부모는 자식의 앞길을 막지 말라는 당부, 남녀 평등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것 등등.. 루쉰은 하나같이 사소한 것들을 말한다. 저기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자는 말 대신에 말이다.
'History > 루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움을 받으면서도 잡감을 쓰는 이유 (1) | 2010.11.27 |
---|---|
하지만 길을 계속 걷다 정 철 현 (1) | 2010.09.28 |
사람을 깨울 수 있는 힘 - 그 무서움 (2) | 2010.09.05 |
2010.8.21 2NE곰 [고사신편] 에세이 복수(2) (1) | 2010.08.31 |
인간조건 - 인간은 꿈을 꾼다. (1) | 2010.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