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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9 역사,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2. 2011.03.31 인디 다큐 <잃어버린 벽> 후기 & 결석계 4
에세이/생명연습2011. 4. 29. 10:08

2NE곰 다이허우잉『사람아 아, 사람아』 에세이#1


역사,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역사는 왜 내 어깨에 무거운 짐부터 지우는가?(p.330)”

  어린 학생인 한한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 앞에 선 인간들은 늘 그렇듯, 탄식한다. 역사여, 아, 역사여. 쑨위에, 허징후, 쉬허엉종, 자오젼후안. 이들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역사의 무게를 지울 수 없는 자들을 보노라면 안쓰러움과 함께 묘한 질투심 같은 것을 느낀다. 그 질투심은 그들이 가진 감각, 아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에 대한 통각’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들을 나는 수많은 픽션들에서 보아왔다. 그 매체가 소설이건 영화가 되었건, 아니면 사람들의 국적이 한국, 중국 그 어디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분명 그들의 삶은 하나의 ‘논’픽션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 그들의 역사, 고통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픽션’ 그 이상, 이하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는 앞서 말한 질투심, 어쩌면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쎄, 개개인의 고통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나의 일상에서 오는 시시콜콜한 아픔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고통을 저울의 양 끝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주눅이 든다. 나의 일상이, 그들의 역사 앞에서 무색하게 될 때 말이다. 물론 나는 역사를 짊어진 자들을 향해 땡깡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부정할 수 없이, 나 또한 나의 역사, ‘논픽션’으로서의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과 다른 역사를 살아갈 뿐이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인 말이지. 그러나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추진시키는 요인, 특히 인간은 구체적이고 복잡 다양하며 그야말로 신비로운 존재야. 더불어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질 사람을 우리가 기다려서는 왜 안 된다는 거지? 한 민족의 역사, 한 시대의 역사는 수천 수만 명의 역사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야. 그 모이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p.345)”


  “누구나가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역사를 걸어가고 있다. 단지 나의, 우리 세대의 역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압이라고 한다면 소설 속 이들에게 역사는 그들을 짓누르는 물보라의 수압과 같은 것이다. 내 주위를 알게 모르게 채우고 있는 공기. 나에게 역사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경향성’이라 답할 것이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대체로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흐름.

  앞서 나는 그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통각’에 대해 말하였다. 이것에 대해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왔지만, 사실 나는 계속 ‘무엇인가 나의 곁에 있음’을, 무엇인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통증(날카롭지는 않지만 답답하게 누르고 있는)은 나와 동시대를 사는 이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혹은 강렬하게 느끼고 있을 역사, 픽션이다.



***

에세이 미리 올립니다.
에세이를 읽어보니 뒤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제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무엇인가 나의 곁에 있는' 역사의 감각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더 제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쓰려니 감상만 떠다니고 글자가 되지 않더라구요.
어렵네요.

전주 잘다녀오겠습니다. 내일, 즐거운 세미나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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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생명연습2011. 3. 31. 00:43

영화 <타인의 삶> 포스터.

*
다큐를 영화관에서 보았던 것은 처음이고, 후기를 쓰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네요.
저는 다큐를 좋아하는 편인데, 자주는 아니지만
텔레비젼에서 가끔 <인간극장>, <다큐멘터리 3일>,<KBS 스페셜> 등등이 나오면 잠시 채널을 멈추고 보곤합니다.

제가 다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 때문입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 혹은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도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저이지만, 어디까지 이들은 픽션이기에
제가 그들로 부터 느끼는 감정들도 가끔씩은 '픽션'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에 비해 다큐는 '논픽션'이니까요. 다큐의 인물들도, 그들을 통해 느끼는 제 감정들도 '논픽션', 날 것의 느낌이 듭니다.

*
다큐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그 한사람 한사람이 '타인의 삶'입니다.

요즘 제가 연극모임을 하면서 계속 생각하는 것 또한 '타인의 삶'입니다.
아큐를 이해하고, 짜오나으리를 이해하고, 지보를 이해하고.

저는 다른 사람을, 혹은 그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뭐랄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 <잃어버린 벽>의 소개 책자를 봤을 때, 제가 생각한 내용은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 이 정도 였습니다.

아아, 그런데 다큐를 볼수록. 이것은, 리얼 다큐 사랑과 전쟁?
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람핀다고(믿는) 여자친구를 향한 주인공의 집요한 집착. 거기에 묘한 정신승리.
  
다큐를 보면 볼수록 이 인간은 뭥미,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남자 주인공이 참 특이하긴 했습니다만,

다큐를 보고 원주로 가는 기차에서 저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다큐 내용보다도요)

인간이 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구를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사실 위선이 아닌가.

다큐 속 주인공 남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
혹은 내가 저런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상상 조차 가지 않더군요. 약간 슬퍼졌습니다.

문득,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어딘가로 넘어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얘기를 들으며 성재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 존재다.
왜 사느냐면 바로 그 때문이다."
-김연수,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아마 우리는 당연하게도, '타인의 삶'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살 수도 없을 겁니다.

'이해'라는 것. 좀 더 배워보고 싶네요. 같이 백지하면서, 투애니곰 하면서요.

*
아, 혹시 이 다큐 중간에 잠깐 나왔던 토마토 계란 볶음 기억하시나요?
아주 잠깐 나왔는데요, 토마토 계란 볶음은 중국에서 흔히 먹는 요리중 하나라네요.
계란과 토마토만 있으면 쉽게 할수 있어요. 자취방에서 해먹었는데 의외로 맛있더라구요.

네, 이것으로 후기를 마칩니다.

*
그리고,
지난번 모임 때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뒤늦게 할머니 구순잔치가 이번주 주말에 있다고 연락이왔어요.
그래서 고향에 꼭 내려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지, 투애니곰 모임 둘다 빠지게되었습니다. 윽윽. 죄송하여요.

숙제는 올리겠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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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