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백지 모임에는 용택군과 혜원언니가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한 관계로 여성동지들끼리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 오붓함은, 치열함의 다른 말이지요. 윤미가 만들어준 스파게티도 먹고, 아림이가 사온 제주 설록차도 마시며, 간간히 생활나눔도 하면서, 백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이렇게 보편적인 말로 밖에 표현을 못하는 저의 한계, 흑)
지난 모임의 키워드는 [백지의 육하원칙]이었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이 작업이 저희에게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연극 연습을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끌어온 것은 무엇이었습까?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순수한 우리의 의지에서 나온 동력이었지요. 하지만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우리에겐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었지요. 똥구멍에 힘 좀 주기위해! 우리의 육하원칙을 정해봤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너희들 정체가 뭐냐?’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해줍시다.
오랜 얘기 끝에 나온 [백지의 육하원칙]입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두둥!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연극을 하는가.
1. 누가 : 돈 없고, 무식한 20대 초중반, 대학 주위를 떠도는, 비정규직 노동자 백수 극단
2. 언제 : 2011년 여름에서 가을
3. 어디서 : 서울(남산 밑)
4. 무엇을 :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을 연극 「Oh, My 阿Q!」으로 만들어 공연
5. 어떻게
: 1) 역할 나눔(실무) : 연출, 조연출, 소품조명담당, 음향담당, 시나리오담당(작가), 회계
: 2)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소설 「아큐정전」의 세계를 재현한다.
6. ★왜(우리의 message) : 우리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인이 되기 위해 연대하자.
이 육하원칙이 어떻게 나왔는지,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의 경우는 다들 쉽게 이해하실 테고,
[누가] : 백지를 하는 우리들은 누구인가요? 우리를 얘기할 수 있는 타이틀이 바로 “돈 없고, 무식한 20대 초중반, 대학 주위를 떠도는, 비정규직 노동자 백수 극단”입니다
곰사형 말처럼 돈 없고, 무식한 게 자랑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렇잖아요. 호호.
대학을 휴학한 사람도, 졸업한 사람도, 지금 대학에 다니는 사람도, 앞으로 대학을 다닐 사람도 있으니 대학 주위를 떠돈다고 할 수 있죠.
여기에 비정규직 노동자 백수, 극단의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써놓고 보니, 앞으로 백지가 만나고 소통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을지 막연하게나마 그려지더군요.
[왜] : why? 가 바로 우리가 왜 이 아큐정전으로 연극을 하는가. 이 연극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 바로 우리의 "message"가 담겨 있습니다. 이 “왜”를 정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 아림이의 아큐정전 책 해설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습니다.
해설에서는 아큐의 비극적인 삶의 원인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1) 지배계급 인물들의 가해 2) 민중의 자해 3) 아큐 자신의 어리석음★
이것을 참고로 해서 우리가 연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봤습니다. (연극의 앞, 뒤 분류는 대강의 느낌일 뿐, 연극을 정확히 둘로 나눈 분류는 아닙니다. 연출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연극의 앞부분 : 아큐를 둘러싼 사회권력, 폭력을 이야기 합니다. 아큐에 대한 연민이 보여질 수 있겠지요.
1) 루쓰, 짜오, 지보 등 지배계급들의 아큐에 대한 폭력
2) 술꾼, 조리돌림 군중들이 대표하는 구경꾼들의 또 다른 폭력.
-연극의 뒷부분 : 아큐의 어리석음이 아큐를 비극적인 결말로 내모는 과정.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결국 아큐를 비극적으로 내모는 것은 “아큐 자신의 어리석음”입니다. 아큐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아큐의 어리석음은 단순히 정신승리법, 노예성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욕구 욕망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 “아큐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좀 더 얘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why?를 하나의 문장으로 결론 내리기가 어려운 탓에 key word를 우선 뽑아보기로 했습니다.
[욕구, 욕망, 노예, 주체, 연대] 가 나왔습니다.
아큐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분명 노예의 방식이지요.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지 못한 삶 말입니다. 저희는 만약 아큐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또 다른 아큐들(소디, 우어멈, 술꾼 등)과 연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아큐들의 연대”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곰사형曰) 아큐들끼리는 연대할 수 있을까요? 또한 아큐들끼리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불가능하면 불가능할 수록 또 다른 접점이 있겠지요. 모여서 더 이야기 해봅시다.
저희에게 버겁기고 한 주제들이지만 과감히 한번 짊어지고 가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100년 전 아큐의 이야기를 재현하려는 것은 이 아큐정전의 텍스트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도 우리를 둘러싼 여러 권력 때문에, 또한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에 또 한사람의 “아큐”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번 모임에서 이야기 나온 것을 이 정도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제가 올린 것에 빠진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지적해주세요.
# 이번 주 백지는 희망버스(여름씨가 올린 공지 참조)를 타고 부산에 갑니다.
출발하기 전에,
김진숙 씨의 책「소금꽃나무」읽기가 목요일, 금요일 밤 10시에 빈가게에서 있다고 합니다.
희망버스 기대되는군요. 부산에서 백지는 어떤 모습일지, 후훗.
+ 팔월 첫주에 일주일간 합숙훈련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다들 어떠신지.
그리고 공연 날짜는 잠정적으로 8.20 토요일로 잡혔어요. 참고해주세요. (잔잔씨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