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작업실2011. 9. 26. 13:30



더 수정해야될 곳 있음 각 역들이 수정하고 저장해서 다시 올려 주셔요.


그리고
감독님과 수유언니에게 멜보냈습니다.
감독님께서 김제죽산면 화동마을에서 있을 영화상영회와 백지의 공연 소개가 담긴 리플랫등 자료를 보내주신다고 했어요,
받는 대로 요기에 올릴테니
수업빠지게 되시는 분들은 자료를 적절히 이용하여 교수님께 편지를 보내드립시다.
하하

그럼 일욜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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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잔잔
에세이/생명연습2011. 9. 24. 21:49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1』, 문학동네, 2011

십자군, 정제된 ‘꾼’의 이야기


그 순간, 역사가 스토리가 될 때

역사는 픽션(fiction)인가, 논픽션(nonfiction)인가. 술 한 잔 걸치고 주정부리듯 읊조리는 자신의 과거조차, 이것을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건이라는 것은 그것이 허구이든 실제이든 간에 발화되는 순간 새로운 ‘겹’을 입게 된다. 그 겹은 투명도에 따라 윤색 혹은 왜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떠한 이야기에 'non'이라는 단어는 쉽게 붙일 수 없는 접두어다. 순도 백 퍼센트의 ‘non'은 결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픽션과 논픽션은 함량의 차이랄까. 특히나 역사라는 ’스토리‘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야기의 태초에 역사가 있었다. 역사는 다른 무수한 픽션, 논픽션들의 원본이다. 어떤 이들에게 역사는 무거운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낡은 평상에서는 그 무거운 역사가 여름날 밤의 한담처럼 입에서 입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몇 백 년, 몇 천 년의 시간에도 살아남은 이야기, 이들이 바로 역사가 아닌가. 역사는 그 자체로 자신이 논픽션임을 보증하려하지만, 때때로 듣는 이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적’인지와 같은 단순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로서의 역사, 그 스토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쯤 되면 이 스토리를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역사가 스토리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스토리텔러, 이야기꾼들이다.




성(聖) 혹은 세속의 전쟁, Crusades

꾼들이 어떤 ‘겹’을 입히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말해진다. Story of the Crusades. 시오노 나나미는 어김없이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실 꾼이라고 하기에 그녀의 스토리는 차라리 반듯한 사관(史官)의 서책이다. 그녀의 방식은 소위 야사(野史)에 연연하는 ‘꾼’의 그것은 아니다. 십자군 전쟁사를 냉철히 분석하고 깔끔하게 구성해내는 단호함은 명백한 사관의 필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오노 나나미를 노련한 이야기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능숙한 이야기꾼의 조건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말하는 서사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사 속에 박제된 인물들을 움켜쥐고 생생하게 흔들어내는 것. 십자군 이야기를 새롭게 흔들어 보이는 그녀의 손이다.

이슬람교도를 무참히 살해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이 제단 앞에 울면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순간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십자군 이야기』p.239)

가끔씩 무심한 듯 덧붙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수다스럽다거나, 농익은 익살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십자군 전쟁을 써내려가기에는 아주 적합하다. 교황의 엄숙한 연설에서부터 시작된 200년 동안의 전쟁. 십자군 전쟁은 다른 어느 전쟁보다도 성(聖)적이며 동시에 세속적인 전쟁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치밀하게 서술해낸 것처럼 십자군 전쟁은 십자가를 짊어진 군대에 걸맞게 성(聖)과 속(俗)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이것은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의 전쟁, 그 숙명 때문일 것이다.

두 간극을 매끄럽게 묘사하면서 그녀가 놓치지 않은 것은, 단연 제 1차 십자군의 주역들이다. 아데마르 주교, 레몽, 보에몬드, 고드프루아, 탄크레디, 보두앵. 시오노 나나미가 살려낸 이야기의 핵심 축은 바로 이 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의 진로 하나하나를 결정하는 이들의 ‘고유성’은 단순한 재미 그 이상이다. 이렇듯 십자군 전쟁 200년의 역사를 픽션처럼 현실감 있게 정제해서 보여줄 수 있었던 노련함은 바로 캐릭터, 즉 ‘인간’에 있다. 1권을 끝으로 십자군 제 1세대는 무대에서 퇴장했다. '성도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십자군의 성스러운 목표를 너무나 인간적으로 달성하고 나서 말이다.

이야기 한 편을 마치고 일어서는 이야기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듯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차마 넘기지 못하고 잡고만 있다. 그래도 어쩌랴, 꾼의 입이 벌어지기를, 이야기가 곧 이어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밖에.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에세이/생명연습2011. 9. 24. 21:25

황석영, 『낯익은 세상 』, 문학동네, 2011

푸른 불빛들의 거리에서, “아, 다행이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있는 거냐?(「낯익은 세상」p.234)”

왕가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감을 느낀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멍한 머릿속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본다. 2011년 7월 부산. 아마 새벽일 것이다.

장대비가 내렸다. 그 장대비보다 더한 물대포가 뿌려진다. 물대포를 맞은 부위가 뜨끈뜨끈하더니 점점 아파온다. 생각이 마비된 채 사람들을 따라 달린다. 얼핏 돌아보니 전경들이 쫓아오고 있다. 사람들이 빽빽한 화장실로 들어가 따가운 최루액을 씻다가 문득 거울을 본다. 온몸이 파란 색소로 뒤범벅이 된 채 멍하니 있는, 위태로운 파란 불빛 같던 하나의 형체. 화장실에서 나와 아픈 눈을 연신 비비며 본 부산의 새벽 거리는 수많은 파란 불빛들이 비척비척 걸어가는, 낯설지만 낯익은 풍경이었다. 나는 왜. 새벽, 물대포가 날아들고 전경들이 곤봉을 휘두르는 그 순간에 이 소설을 떠올렸던가.

“아, 다행이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딱부리는 이제 알고 있었다. 수많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가까지의 집과 건물과 자동차들과 강변도로와 철교와 조명 불빛과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과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먼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낯익은 세상」p.228)”

아, 다행...일까. 처음 침대에 느긋이 누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마치 내가 이 말의 주인이라도 된 것 마냥. 부산에 다녀와서 나는 다시 책장을 펼치고 하나하나 구절들을 다시 읽고 또 읽는다. 아직 파란물이 빠지지 않은 손가락으로 연신 책장에 밑줄을 쳐본다.

수레바퀴의 한 회전. 백년 뒤에는 현재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난지도에 다시 꽃이 피듯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할 것이다. 덧없고, 쓸쓸한 것이다.

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나는 자격이 없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허겁지겁 쓰레기를 버리는 내가, 쓰레기 악취에 코를 찡그리는 내가 말이다. ‘꽃섬’의 철저한 외부인이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쓰레기 매립지라든가, 자본주의의 욕망이라든지. 잊혀져가고 있는 푸른 불꽃들, 도깨비들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을까. 그곳에서도 결국 다시 꽃은 필 것이라고. 물대포를 흠씬 맞으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꽃섬을 떠올렸다. 온갖 주인 잃은 욕망들이 다시 한 번 버려진 곳.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하는 거대한 쓰레기장. 이곳에서는 쓸모가 남은 쓰레기들이 또 다른 욕망들에 의해 분류되어 되팔아진다. 쓰레기에 값이 매겨지고, 이 돈뭉치를 따라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 들어 밤이면 소주와 잡탕 냄새가 진동한다. 쓰레기가 그 매개라는 점만 빼면 내 주위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에게는 꽃섬이 고무장갑으로 간신히 집어올린 쓰레기의 감촉처럼 어정쩡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나는 더 쉽게 이 세계를 동정하고, 희망의 말을 건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꽃섬은 텍스트 안에서만 박제된 세계가 아니었다. 단지 여러 모습을 띈 채로, 다양한 시공간의 좌표 속에서 있어 쉽게 깨닫지 못할 뿐이다. 꽃섬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쓰레기 매립장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본의 욕망을 지탱하는 그 모든 곳으로 확장된다. 나는 불타는 꽃섬만큼이나 낯익은 세상을 마주했다. 자본의 욕망이 만들어낸 또 다른 공간, 푸른 불빛들이 그렇게 차츰차츰 뒤로 흘러갔던 부산 거리에서 말이다. 내 눈 앞에서 또 다른 꽃섬을 마주한 이후, 그렇게 나는 조금 더 편안하게 딱부리의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볼 수 있었다.

새벽이 다시 밝아 오고, 당연한 듯 허기가 찾아온다. 배추김치 한 조각과 일회용 그릇에 담긴 뜨끈한 육개장을 황급히 넘기며, 조용히 곱씹는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있는 거냐?” 그리고, 다행이라고. 또 이렇게 아침이 밝았다고.

2011년 7월, 부산의 한 거리에서 나는 쭈그리고 앉아 이렇게 중얼거렸다.


 [푸른 불빛] http://photo.naver.com/view/200508092156578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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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백지 작업실2011. 9. 23. 21:59

공지가 늦었어요.

내일 원주에 오겠지요!
같이 점심먹으려면, 서울에서 오는 팀은 청량리에서 12시 기차를 타면 1시반 쯤 원주역에 도착할테고,
아림도 1시 반쯤 온다니까 원주역에서 우선 다 만나요.


간단히 짜본 계획은,
원주역에서 걸어서 막국수집에서 막국수와 수육을 먹습니다.
(원주 다큐페스티발 폐막작 <아이들>이 15:00 시에 있는데요, 볼 지 밥먹으면서 얘기해요.) 
저희 학교에 있는 노천극장에서 연극연습을 합니다.
저녁 겸 술자리를 합니다.


같이 치악산 구경을 가거나, 등등 계획을 더 잡으면 좋을텐데,
연극 연습이 우선일 것 같아서요.

저희 집이 그리 크지 않아서, 불편하게 자야할 것 같지만, 괜찮겠지요?
이불은 다행히 좀 있는데, 그래도 따뜻하게 입고오셔요.

아림은 한시 반에 우선오는 거죠. 또 연락주세요.

내일 봅시다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백지 작업실2011. 9. 22. 23:17

안녕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쓰네
아니 생각해보니
컴퓨터 타자 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네 그래

며칠간 내 노트북은 공포의 파란화면을 내보이며 파업을 하고 있었고,
그걸 핑계삼아 교무실엔 잘 안들어오게 되더라고
자연스레 컴퓨터도 안하게 되고
공지도 늦게서야 확인한다

요즘은
선선해진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 속에도 조금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바람이 일지 않아 습하고 곰팡이가 피고 있었는데 말이야.

빠르게 지나온 날들, 한 3년 정도 내 안에 쌓이고 차이고 담겨졌던 게
뒤엉킨 실타래마냥 그 시작과 끝을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뭐가 뭐고, 뭐가 뭔지, 뭐가 좋고, 뭐가 나쁜건지, 뭐가 어땠는지, 저쨌는지..
누군가 내게 옳고 그름을 얘기한 것도 같은데 난 매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머리만 벅벅

하지만 오늘 내가 바라본 나는

하고 싶은데로, 맘 내키는 데로, 즉흥적으로, 그대로, 주욱 그대로, 여전히 그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살면 곤란해진다고 혼이 났었는데도 변하지가 않어

이 공간의 주인, 인생의 주인이 누구도 아닌 내가 되야 한다며
참... 얼치가 없게도 내가 그 얘길 천연덕스럽게 애들한테 하고 있는 내모습에, 이건 뭔가... 싶고
칠수록 실력이 느는 장구를 치고, 또 칠수록 실력이 느는 기타를 치면서 '아 참 좋다' 싶어 기쁜데
그게 왜 꼭 순간인지, 나의 전체를 끌고 가진 않는건지.

일을 하자고 하면,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면, 이것 좀 해보지 않겠냐고 하면
난 요즘 정리 먼저 하구요 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무얼 어찌 정리해야할지 몰라서, 뒤죽박죽 내 책을 닫아버리고 천명관의 고래를 펴는 나야
가끔은 커다란 고목나무에게 순리를 아는척 이상한 기도를 올리기도하지.

오늘은 기분이 좋다. 내 살고 싶은 데로 살아서 참 기분이 좋다.
이 말을 써놓고 보니 살짝 억지스럽기도 하다.
마냥 좋지만은 않고, 마냥 나쁘지만도 않은
무던히 살아온 내 인생이야 라며 당당히 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겐 혼날까 조마조마하기도 해

글을 안쓰다 쓰니까, 컴퓨터를 안하다 하니까,
그리고 이 밤에 원래 자다가 잠을 안자니까,
아니 사실 나의 요즘 상태라고나 할까. 4개의 문단들을 어떻게 섞어놓든지 앞뒤는 없어.  
감상이 넘쳐 흐른 것 같네. 



-

아나 ...

시 고만 쓰고

이번 주 토요일에 원주 가는 일정을 살펴봤습니다.

저는 토요일 오후 1시 반즘에 원주역에 도착합니다.

금요일 저녁에 서울올라가긴 힘들구요..

토요일에 상주에서 출발하는데

바로가는 버스나 기차는 없고 다들 갈아타야 되더라구용

시간을 보니 기차가 버스보다는 좀 더 적게 걸리길래

기차를 이용해보고자 합니다. (상주 - 영주 - 원주 *무궁화호*)

다들 언제쯤 도착하는지요..

제가 늦어도 어디로 찾아가야되는 지 알려 준다면 그리로 곧장 가리요.

그럼 원주서 봐요 우리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